제습기 물통에는 하루에도 몇 리터씩 맑은 물이 찬다. 그런데 이 물을 싱크대에 버린다는 말에 “더러운 물을 음식을 다루는 곳에 붓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공기 중 먼지와 곰팡이 포자가 섞였을 수 있고, 물통 안에서 세균도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설거지와 식재료 세척에 쓰는 수돗물이 아니라 배수구로 흘려보낼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반론도 있다.
쟁점은 제습기 물을 마셔도 되느냐가 아니다. 이 물이 싱크대에 버리면 안 될 만큼 위험한 오수인지, 버리는 과정에서 싱크대와 주방을 의미 있게 오염시키는지를 따져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습기 물은 음용수만큼 깨끗하지 않지만, 싱크대에 버려도 된다. 실제로 여러 제조사가 싱크대나 욕조를 정상적인 배수 장소로 안내한다. 다만 물통의 물을 싱크볼 전체에 끼얹기보다 배수구 가까이에서 천천히 붓고, 눈에 보이는 찌꺼기가 남으면 수돗물로 흘려보내면 충분하다.
맑아 보여도 깨끗한 물은 아니다
압축기식 제습기는 습한 공기를 차가운 냉각핀에 통과시킨다. 공기가 이슬점 아래로 식으면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히고, 물받이와 배수로를 거쳐 물통에 모인다. 이 과정 때문에 제습기 물에는 수돗물보다 칼슘·마그네슘 같은 용존 미네랄이 적은 경우가 많다.
2024년 오키나와에서 약 1년 반 동안 조사한 제습기 응축수 연구는 연구진이 측정한 성분의 평균 합계가 제습기 물에서 11.7㎎/L, 수돗물에서 119.8㎎/L였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제습기 물의 주요 성분에는 총유기탄소 7.0㎎/L와 암모늄 3.8㎎/L가 포함됐다. 미네랄이 적다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제습기는 공기만 골라 빨아들이지 않는다. 필터를 통과한 미세먼지와 피부 각질, 곰팡이 포자, 실내의 휘발성 물질이 냉각핀에 붙었다가 물로 씻겨 내려올 수 있다. 휴대용 제습기의 응축수를 실내 오염물질 채집 수단으로 활용한 2020년 연구는 서로 다른 실내에서 얻은 물에서 140종이 넘는 반휘발성 유기화합물을 확인했다. 모두 위험한 농도였다는 뜻은 아니지만, 제습기 물이 그 방의 공기와 장치 상태를 반영한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냉각핀과 물받이, 물통은 반복해서 젖기 때문에 미생물이 자랄 수도 있다. 먼지가 영양분이 되고 물이 오래 고이면 표면에 생물막이 생긴다. 제조사 프리지데어도 작은 먼지 입자가 제습기 물에 모이고, 이것이 슬러지와 조류를 만들어 배수 호스를 막을 수 있다며 주기적인 세척을 안내한다.
그러므로 제습기 물을 “깨끗한 물”로 여겨 마시거나 요리에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마실 수 없다는 말과 싱크대에 버릴 수 없다는 말은 다르다. 생수도 아니지만, 분뇨나 감염성 폐기물 같은 고위험 오수도 아니다.
싱크대는 원래 배수 장소다
가장 직접적인 근거는 제습기의 설계와 사용설명서다. 하이얼은 물통을 꺼내 싱크대나 욕조에 비우라고 안내한다. 미디어의 제습기 설명서도 물통을 직접 비우거나 호스를 연결해 싱크대 등 배수구로 연속 배수하도록 설명한다. GE도 제습기 호스를 바닥 배수구에 연결하는 것을 정상적인 사용법으로 제시한다. 응축수가 싱크대에 버리면 안 될 정도의 위해물이라면 제조사가 이를 일상적인 배수 방법으로 안내하기 어렵다.
주방 싱크대 자체도 무균 공간이 아니다. 생고기와 채소의 흙, 음식물 찌꺼기, 손과 수세미에서 나온 미생물이 계속 들어오며 특히 배수구에는 생물막이 형성된다. 미국 가정의 주방 네 지점을 조사한 2022년 연구에서도 식품매개 병원체가 포함된 균속은 싱크대 배수구에서 가장 자주 검출됐다. 이 사실이 싱크대 위생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제습기 물이 완벽히 깨끗해야만 싱크대에 버릴 수 있다는 기준을 적용한다면, 음식물 국물이나 걸레를 헹군 물도 버릴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싱크볼과 배수구를 구분하는 일이다. 싱크볼은 식재료와 식기가 닿을 수 있어 사용 뒤 씻어야 하는 표면이고, 배수구는 생활하수를 흘려보내도록 만든 곳이다. 그러므로 제습기 물을 싱크볼에 보관하거나 그 물로 싱크대를 씻는 것과 배수구에 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다. 물통의 물을 배수구로 보내는 것은 싱크대의 용도에 맞는다.
제습기 한 통의 물이 가정의 싱크대 미생물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직접 측정한 연구는 찾기 어렵다. 따라서 오염이 전혀 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조사가 싱크대 배수를 표준 사용법으로 인정하고, 싱크대가 이미 다양한 생활오수를 처리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을 합치면 제습기 물만 특별히 화장실에 버려야 할 근거는 없다. 남는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버릴 때 주변으로 튀는 물이다.
문제는 버리는 장소보다 튀기는 방식이다
병원 싱크대를 형광물질로 시험한 2022년 연구에서는 물질을 배관의 물막이와 연결관에 넣었을 때 싱크대 밖에서 물방울이 검출되지 않았다. 반면 배수구 표면에 놓고 물이 떨어지게 하자 대부분의 싱크에서 주변으로 튀었다. 병원에서 병원균 전파를 연구한 결과이므로 가정의 위험도를 그대로 나타내지는 않지만, 배수구에 강한 물줄기가 직접 부딪힐 때 튐이 생긴다는 물리적 경로는 같다.
따라서 물통을 높이 들고 콸콸 쏟을 이유는 없다. 배수구 가까이에서 물통을 기울여 천천히 붓고, 싱크볼에 먼지나 물때가 남았다면 수돗물로 짧게 헹군다. 바로 옆에 씻어 둔 식기나 손질 중인 식재료가 있다면 먼저 치우는 편이 좋다. 이것은 제습기 물이 특별히 위험해서가 아니라 어떤 오수든 음식에 튀지 않게 하는 기본적인 주방 위생이다.
물을 버릴 때마다 싱크대를 소독제로 닦을 필요는 없다. 눈에 보이는 찌꺼기나 냄새가 없다면 수돗물로 흘려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통에 미끈한 막, 검은 점, 덩어리진 찌꺼기나 악취가 있다면 싱크대보다 제습기 관리 상태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 물은 배수구에 버리고 물통과 필터·배수로는 제품 설명서에 따라 세척해 완전히 말린다.
싱크대가 막혀 물이 고이거나 역류하는 상태라면 예외다. 이때는 제습기 물의 문제가 아니라 배수구 속 오염물이 싱크볼로 되올라와 주변에 튈 수 있는 것이 문제다. 먼저 막힘을 해결하고, 그동안은 변기나 욕실 배수구처럼 정상적으로 내려가는 곳을 이용하면 된다.
물통의 상태는 청소 신호다
물을 어디에 버리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물통을 얼마나 오래 방치하느냐다. 며칠씩 고인 물은 방금 생긴 응축수보다 미생물이 증식할 시간이 길다. 물통은 자주 비우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남은 물을 제거해 말린다. 연속 배수 호스도 계속 물이 흐른다고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으므로 제조사 지침에 맞춰 세척한다.
제습기 물이 투명하더라도 물통 청소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약간의 먼지가 보인다는 이유로 물통 전체를 위험한 폐수처럼 취급할 필요도 없다. 냄새와 생물막은 제습기를 청소하라는 신호이지, 싱크대를 폐기 장소에서 제외하라는 신호가 아니다.
판정은 간단하다. 제습기 물은 먹거나 몸에 쓰는 깨끗한 물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가정용 제습기에서 모인 물은 싱크대 배수구에 버려도 된다. 주변 식기와 음식물을 치우고 배수구 가까이에서 천천히 부은 뒤, 찌꺼기가 남으면 수돗물로 헹군다. “더러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배수구에도 버리면 안 되는 물이 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