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성역인가?

“5·18은 성역인가?”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이후 어느 순간부터 소셜 네트워크에 이 질문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민주사회에 묻지 못할 역사는 없으니 얼핏 답은 간단해 보인다. 5·18을 둘러싼 징계와 보상, 유공자 심사와 법률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좀처럼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스타벅스 사건 이후 배재고 야구부까지 스타벅스가 시작한 조롱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비판이 쏟아지자 이에 대한 반발로 5·18이 성역이냐는 질문이 쏟아지면서 표현의 자유와 “성역” 질문, 북한군 개입설, 5·18 전체를 폭동으로 부르는 주장, 유공자 명단 의혹 등으로 이어졌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5·18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막아야 할까? 5·18은 성역처럼 지켜야 하는 것일까? 5·18에 쏟아지는 의혹들은 정당한 의혹일까? 이제부터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5·18은 정말 성역으로 취급되고 있나? "5·18은 성역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정말로 성역으로 대우받고 있기에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5·18은 정말로 성역으로 취급되는가? 우선, 5·18에 대해 갖가지 의혹들이 난무한다는 것부터가 5·18이 성역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정말 성역이라면 의혹 제기에 대해 제제가 가해질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위법 사실이 없는 이상, 근거가 아예 없는 의혹 제기도 처벌 받지 않는다. 그러니까, "5·18은 성역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짧은 답은 "아니오"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이 나올까? 마치 5·18이 성역처럼 보호받고 있다는 관념은 왜 나오는 것일까?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하나는, 5·18에 대한 의혹 제기가 비판 받는 것을 억압이나 제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그런 의혹 제기가 다른 시민들에 의해 비판 받는 것조차 성역 취급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들의 비판은 비판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마음이다. 5·18에 대해 의혹 제기를 할 수 있듯이, 그 의혹 제기에 대한 비판 역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사회의 토론이다. 두번째 이유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8조일 것이다. 이 법은 5·18에 관한 허위사실을 공개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정보통신망과 출판물뿐 아니라 공개 토론회·기자회견·집회 발언도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수단으로 열거하지만, 그 장소에서 나온 모든 부정적 표현을 처벌하는 조항은 아니다.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 과정에 관한 보도 등에는 명시적인 예외를 둔다. 이 법은 마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허위사실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2항)가 있는 한국에서 이 법은 기존 법 체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것은 논란이 많지만, 허위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선진국에도 있는 법이다. 이 법은 실제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를 제제하는 것이므로 헌법 정신을 넘어서서 언론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법이 왜 생겼을까? 이미 기존 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할 텐데 왜 굳이 5·18에 한해서 이런 법을 추가로 만든 것일까? 이 조항이 생겨난 것은 역설적으로 5·18이 성역이기는 커녕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의 희생량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5·18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증거가 넘치도록 쌓여 있고 그 증거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5·18이 북한간첩의 소행이라느니, 시민들이 먼저 무기를 들고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는 등의 허위사실이 퍼뜨리는 것은 5·18 희생자들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활동인 시민운동을 부정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명예훼손을 넘어서서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런 법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5·18은 계속 근거 없는 음해에 시달려왔고, 5·18 특별법이 생긴지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참 전에 허위로 판명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5·18이 성역이냐고 묻는 것은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 있겠다. 5·18에 대한 의혹들 그럼 5·18에 쏟아진 의혹들은 정말 다 거짓인가? 어떤 의혹들이 있고, 그런 의혹들은 어떤 검증을 거쳐서 거짓이라는 판정을 받았는지 살펴보자. 북한군의 개입은 사실인가? 북한군 개입 여부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처음부터 명시적으로 조사 과제로 삼았다. 이른바 ‘광수’ 사진, 탈북자 증언, 간첩 검거 발표 등 북한군 개입 주장을 일곱 과제로 나눠 검증했고, 조사위는 이 핵심 주장들이 허위라고 결론냈다. 조사 과정에서 지만원이 주장한 북한군 개입 증거 42개는 근거가 없거나, 5·18 시기 촬영된 사진을 잘못 판독하고 이를 제한된 군사 지식으로 해석한 엉터리인 것으로 판명됐다. 탈북자들의 북한군 개입설도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조사위는 자신이 직접 광주에 침투했다고 주장한 정모씨를 조사했는데, 정씨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5·18에 참여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결론 내렸고, 정씨 본인도 침투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의혹들이 실질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에 인정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 의혹은 전두환 본인에게서도 부정된 바 있다. 2016년 4월 23일 신동아의 전두환 인터뷰에서 전두환은 북한군 침투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전두환 “전혀.” 이순자 “각하가 청와대를 경호하는(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때 북한 특수군(1968년 김신조 일행의 1·21 침투사건)이 내려온 걸 물리쳤고, 1사단장 하실 때 북한이 땅굴을 파고 남침한 걸 잡아냈죠. 그래서 광주사태 때 간첩을 집어넣어서 광주사태를 악화시켰거나, 또 그걸 기화로 이북에서 사람을 들여보냈거나 그럴 개연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증거가 없어요. 그래서 각하는 아예 말씀을 안 하세요. 지금 그 말(북한군 침투설)을 하는 사람은 각하가 아니고 지만원이란 사람인데, 그 사람은 우리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독불장군이라 우리가 통제하기도 불가능해요. 그걸 우리와 연결시키면 안 돼요.” 고명승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우리 연희동에서 코멘트한 일이 없습니다.” 전두환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어디로 왔는데?” 정호용 “5·18 때 광주로. 그래서 그 북한군들하고 광주 사람들하고 같이 봉기해서 잡았다는 거지.” 전두환 “오…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전 전 대통령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두환은 이렇게 인터뷰한 이후에 나중에 회고록을 내면서 이 주장을 뒤집고 다시 북한군의 개입을 주장했다. 그래서 전두환의 회고록은 5·18 특별법에 의거해서 출판 및 배포금지를 재판에서 다투었고, 그 재판에서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검증된다. ‘현재 북한은 한국의 정치 불안을 빌미로 어떤 군사행동도 취할 기미가 없다’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문건(1980년 5월) 내용도 판결문에 담겼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376317 5·18은 폭동이었나? 5·18 광주에서 시민이 총기로 무장했고 군대와 맞서 싸웠다. 시민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5·18은 폭동인가? 혹은 반란인가? 폭력시위인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폭동”이라는 말은 가치중립적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폭동은 사전적인 의미는 "집단적 폭력 행위를 일으켜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일"이다. 단순히 폭력이 있다는 것만으로 폭동이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5·18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히기는 커녕, 신군부의 헌정 파괴에 맞서 헌정 질서를 지키려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계승한다고 선언한 4·19 혁명도 폭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마산에서는 3만여 명의 시위대가 자유당 관련 시설을 파괴했고, 서울·부산·광주에서도 경찰시설 공격과 방화, 건물 파괴가 벌어졌다. 분명히 폭력이 동반된 시위인 것이다. 하지만, 4·19 혁명은 아무도 폭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심지어 4·19는 헌법 전문에도 인용되어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다음은 헌법 전문의 첫 구절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그러니까, 폭력이 동반된 시위였던 4·19를 헌법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개념으로 보고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까 폭력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폭력이 왜 발생했고, 어디를 향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시민의 저항권으로도 설명된다. 독일 기본법은 다른 구제수단이 없을 때 헌정질서를 폐지하려는 자에 맞설 권리를 명시하고, 그리스 헌법은 헌법을 폭력으로 폐지하려는 자에게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저항할 권리이자 의무를 규정한다. 포르투갈 헌법은 공권력에 호소할 수 없을 때 공격을 힘으로 물리칠 권리까지 명시한다. 우리 헌법은 명시적으로 저항권을 기술하고 있지는 않지만, 4·19 민주이념의 계승을 선언한 것은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시민의 저항권은 무소불위의 권한이 아니다. 무력저항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이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필요한 범위인지, 민간인을 구별해 보호했는지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5·18은 그런 시민 저항권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을까? 5·18은 신군부의 헌정질서 파괴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정당한 이유는 충분하다. 이는 5·18 특별법 첫번째 조항에서도 밝히고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민족정기를 함양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광주 시민에게 무력저항이 최후의 수단이었음도 명백하다. 5월 21일 오후 1시, 신군부는 금남로에서 연좌 농성 중이던 시위대에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이날 총격으로 항쟁 기간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그리고 곤봉과 총 개머리판으로 구타하고 상점과 건물 안까지 추격했으며, 실탄을 발사해 다시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 비무장 시위대가 군대로부터 총격을 받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같이 무장하고 싸우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민군이 무장한 목적 자체가 시위대를 포함한 시민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며, 광주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자발적인 도움도 그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광주 시민군의 무력저항은 시민의 저항권 발동으로 인정 받기에 충분하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고, 그 결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시민의 저항권이 아니라 정당방위, 혹은 자위권도 성립한다. 형법 제21조에 따르면,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막는 상당한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한다.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군대의 일제 사격은 부당한 침해임이 분명하므로, 정당방위 또한 성립한다. 국내 법학계에서도 5·18을 헌정질서를 지키려는 집단적 저항권의 행사이자 불법적인 국가폭력에 대한 자기방어의 성격을 함께 지닌 사건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5·18을 폭동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폭력시위라고 부르는 것도 일견 객관적인 용어처럼 보이지만, 실체적 진실을 전달하는 표현이라 할 수 없다. 5·18 특별법 또한 이 역사적·법적 판단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적고 있다. 2조 1. “5ㆍ18민주화운동”이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5·18 유공자 명단은 왜 공개하지 않나? 국가 유공자 명단인데 공개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일지 모르지만, 5·18 외의 다른 국가 유공자들도 명단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전체 실명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5·18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보훈행정의 원칙이다. 그렇다면 왜 국가가 지정하는 유공자인데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일까?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다. 국가 유공자는 대개 국가에 기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 신체의 일부 등 심각한 희생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국가 유공자라는 것이 명예로운 사실이기는 하나, 그런 희생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경우는 많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공을 세웠지만 그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다면 그것을 공개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고엽제 유공자들도 자신이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걸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민주화 운동 중에 잡혀서 실형을 산 경력도 명예로운 경력이라고 보지만, 또한 전과자 딱지가 붙기도 한다. 그런데, 국가 유공자의 인정 사유와 명단이 공개된다면 전사·부상·장해·질병·구금 경위와 유족관계 등이 함께 드러나기 쉽다. 그래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예외도 있다. 국가보훈부는 독립유공자의 성명과 운동계열, 훈격 등을 공개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와 학술적 이용, 공훈 선양과 독립운동사 재정립 등의 목적으로 공개하는데, 이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거니와, 독립유공자 대부분이 사망했기 때문에 개인정보 노출의 문제가 매우 적어졌기 때문이다. 조상이 독립유공자임을 숨기고 싶어하는 후손은 거의 없기도 하다. 때문에, 법원에서도 일반 국가유공자와 고엽제후유증 환자 등 다른 보훈대상자의 명단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확인했고, 대법원은 2020년 비공개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확정했다. 국가보훈부가 공개하는 자료도 5·18·4·19·참전·특수임무 등 보훈 유형별 인원 통계이지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법원도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부상 내역과 장해등급이 사생활의 영역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세금이 쓰이는 제도는 철저히 감사해야 하지만, 그 원칙이 곧 국가폭력 피해자의 몸과 수감 기록을 인터넷에 공개하라는 요구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5·18 관련 자료가 모두 비밀이라는 뜻도 아니다. 이해찬·설훈·민병두의 자료를 둘러싼 소송에서 하급심은 세 사람이 당시 국회의원인 공인이었고 유공자 해당 여부와 인정 사유가 이미 공론화됐다는 이유로 공개의 공익이 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면서 등록신청서와 보상결정서 등을 공개하라는 결론이 확정됐다. 일반 피해자 전원의 민감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공인의 지위, 이미 형성된 사회적 관심, 사생활 침해의 정도를 사안마다 따져 인정 근거를 공개하는 것은 다르다. 전체 일반인 명단은 보호하면서 공인 자료를 선별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는 두 판결은 모순되지 않는다. 명단 공개하라는 주장에는 숫자를 뒤섞어 만든 의혹도 따라붙는다. 1,979명은 2023년 「5·18보상법」에 따라 접수된 8차 보상 신청자 수이지, 새로 등록된 유공자의 수가 아니다. 이 신청만으로 유공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5·18민주유공자가 되려면 「5·18민주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보훈부에 별도로 등록을 신청하고 요건 확인과 등록 결정을 받아야 한다. 보상법상 신청과 관련자 판단, 유공자법상 등록은 서로 다른 법적 판단이다. 이 구분을 지우고 1,979명을 “신규 유공자”라고 부르는 것은 검증이 아니라 숫자의 왜곡이다. 필요한 것은 전면적인 신상 공개가 아니라 제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다. 현재 국가보훈부는 보훈 유형별 등록 인원과 지원 현황을 공개하고, 행정안전부도 8차 신청 총수와 일부 심의 현황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신청부터 등록·취소·환수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정기 통계, 개인을 식별할 수 없게 만든 대표 결정례, 심사위원의 제척·회피 현황은 더 보강해야 한다. 원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독립적인 외부감사를 정례화하고 오류·취소·환수 결과도 공개해야 한다. 공인의 인정 근거 역시 자동으로 공개할 것이 아니라, 공인의 지위와 사회적 관심, 공개의 공익과 사생활 침해를 사안마다 비교해 범위를 정해야 한다. 투명성은 모든 피해자를 의심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각자 결백을 증명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공개하고 검증해야 할 것은 피해자의 이름과 상처가 아니라, 국가가 누구를 어떤 기준과 증거로 인정했고 그 판단을 어떻게 감사했는가이다. 광주와 무관한 정치인이 유공자 명단에 들어갔다? “광주와 상관없는 민주당 정치인 40명이 5·18 유공자”라는 명단도 퍼졌다. 이 주장은 일반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5·18 유공자로 임의로 바꿔 불렀고, 퍼진 40인 명단의 대부분은 그 일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단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당사자 확인 결과 우원식·정청래·이학영·박지원·추미애 등은 5·18 유공자가 아니었다. 이 명단은 사실이 아니다. 광주 현장에 없었지만 5·18 유공자로 등록된 정치인이 있긴 하다. 이해찬은 자신과 설훈·민병두가 광주 현지에서 5·18로 희생당했거나 활동한 게 아니고, 당시 광주가 고립됐던 상황을 깨기 위해 서울이나 다른 곳에서 시위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 수용생활을 했기 때문에 유공자로 분류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또한 5·18 특별법에서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아니라 '관련하여'라고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조 2항 마. 5ㆍ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수배ㆍ연행 또는 구금된 사람 이처럼 이해찬은 실제로 5·18 당시 광주에 있지 않았지만, 광주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시위를 했다가 옥사를 치렀기 때문에 5·18 유공자로 선정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해찬의 경우 대법원도 일반인 전원 명단과 달리 이해찬·설훈·민병두의 공적조서는 공개하라고 한 것처럼 모든 명단이 비공개인 것이 아니라, 공익이 큰 공인은 사안별 공개가 가능하다. 허위에 기반한 의혹 제기 5·18에 대한 대표적인 의혹들을 살펴보았는데, 보다시피 이 의혹들이 새로운 의혹이 아니라 모두 과거에 이미 제기되었던 의혹이고 정부와 민간 단체, 역사학자들이 참여해서 이미 이 의혹들이 거짓임을 밝힌 것들이다. 이렇게 거짓임을 밝혀진 의혹들을 새로운 증거도 없이 계속해서 다시 제기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미 검증된 사실에는 의문을 제기하면 안되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허위 사실 유포는 5·18 특별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허위 사실들을 주장하지 않고 질문의 형태로 묻는다면 어떨까? 이미 검증된 사실이라 하더라도 잘 모르면 물어볼 수 있는 일 아닐까? 광주 시민들이 사실은 자발적인 시위를 한 것이 아니라 북한군의 공작으로 시위를 한 것이 아니냐고 물으면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해 이미 민관이 의견 일치를 보고 수 차례 공식적인 답변을 한 적이 있음에도 계속 물어봐도 되는 것일까? 물론 새로운 근거 없이 이미 해소된 의혹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사회적인 낭비라고는 할 수 있다. 법정 다툼에서도 그런 행동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금한다. 그러나, 민주사회는 법정이 아니고 그런 낭비를 하는 것도 자유이지 않은가? 왜 질문하는 것도 나쁘다고 하나? 이것이 5·18 성역화 아닌가?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5·18 유가족들이 5·18은 북한군의 공작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심지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밝혀내고 공식적으로 인정도 받은 후에 또다시 그런 의문을 접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비유를 하나 해보자. 당신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의심을 샀다. 그런데 기록을 조사한 결과 친일파가 아니며 오히려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렇게 의심을 샀던 일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누군가 모임 때마다 계속 "너네 할아버지 친일파 아니야?" 하고 묻는다. 이 질문은 직접적인 주장이 아니기 때문에 명예훼손으로도 처벌할 수 없다. 법적인 문제가 없는 이 주장은 계속 해도 되는 주장일까? 법을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문제 없는 행동인가? 아마도 자초지종을 아는 사람들은 그 질문을 반복하는 사람을 심각하게 비난할 것이다. 결국 질문이라는 형태로 역으로 비판 받을 가능성을 교묘하게 차단하려 한 얄팍한 모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 5·18에 대해 질문의 형태를 띠고 쏟아지는 이야기들도 같은 차원의 이야기들이다. 만약에 그런 이야기들이 이전에 검토되지 않은 새로운 증거를 들고 나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이 막연한 의혹, 이미 검토되고 반박된 증거들을 들고 나오면서 무한히 의혹 제기를 반복한다면 그 행위는 윤리적으로 매우 질 나쁜 행동이다. 질문을 했으면 답을 받아라 모르면 물을 수 있다.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했거나 유튜브와 SNS의 토막 정보만 접한 사람이라면 “북한군이 개입한 것 아닌가”, “시민이 총을 들었으니 폭동 아닌가”, “유공자 명단은 왜 공개하지 않나”라고 질문할 수 있다. 처음 묻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답이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답에 의해 자신의 생각이 바뀔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위다. 답을 받을 생각도 없이 사람들 앞에 의혹만 던지는 것은 질문이 아니다. 특히 이미 조사와 판결, 자료가 제시된 사안에서 그 답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며 같은 물음만 반복하면, 물음표는 무지를 표시하는 기호가 아니라 불신을 퍼뜨리는 도구가 된다. “답을 받아라”는 말은 국가의 설명을 무조건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답을 읽고 그 근거를 검토하라는 뜻이다. 동의한다면 의혹을 거두면 되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느 조사에서 어떤 자료가 빠졌는지, 어느 판결의 사실인정이 왜 틀렸는지, 기존 결론을 바꿀 새로운 증거가 무엇인지 제시하면 된다. 그러면 다시 검증할 수 있다. 반론은 기존의 답이 들인 노력만큼 구체적이어야 한다. 5·18에 관한 주요 의혹은 이미 그런 절차를 거쳤다. 북한군 개입설은 군·정보기관 자료와 진상조사로 검토됐고, “폭동”이라는 규정은 신군부의 내란과 계엄군의 폭력 뒤 시민의 무장저항이 일어났다는 판결의 사실관계와 충돌한다. 유공자 명단과 인정 자료의 공개 범위도 법원이 개인정보와 검증의 공익을 비교해 판단했다. 이 결론들이 영원히 수정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제 그것을 뒤집으려는 사람이 새로운 증거와 논증을 내놓을 차례라는 뜻이다. 물음표가 면책특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저 사람이 간첩 아닌가?”라는 문장은 형식상 질문이지만, 맥락에 따라서는 그 사람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로 기능한다. 대법원도 문장 하나의 형식이 아니라 전후 맥락과 암시된 기초 사실, 진위를 증명할 수 있는지를 종합해 사실 적시 여부를 판단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질문할 자유와 질문의 방식·근거에 책임질 의무는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처음 묻는 시민과 답을 확인한 뒤에도 영향력을 이용해 반증된 의혹을 반복하는 사람은 다르게 대해야 한다. 전자에게는 자료와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후자에게는 언론의 팩트체크, 시민의 공개 반박과 정정 요구, 공직에 대한 평가가 따라야 한다. 플랫폼도 질문 자체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이미 반증된 허위의 반복에 사실검증 표시를 붙이고 투명한 기준 아래 추천과 수익화를 제한할 수 있다. 용인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동의하거나 거짓말 앞에서 침묵한다는 뜻이 아니다. 폭력과 사적 보복으로 입을 막지 않고,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시민으로 남겨둔다는 뜻이다. 형벌은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좁은 최후수단이어야 한다. 그 전에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질문에는 답하고, 답을 외면한 반복에는 반박과 책임을 돌려주는 것이다. 질문할 자유에는 답을 들을 책임이 따른다. 5·18은 성역이 아니라 상식이다 성역은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하거나 새 증거로 다시 검토할 수 없는 영역이다. 5·18은 그런 성역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 군과 정보기관, 법원과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십 년 동안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대조하며 거듭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의 발표가 뒤집혔고 책임자들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보상과 유공자 제도도 여러 차례 고쳐졌다. 지금도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당연히 다시 검증해야 한다.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과 모든 주장을 매번 처음부터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해 시위를 일으켰다는 주장은 반복된 조사에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이 무장하고 폭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군부가 먼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계엄군의 폭력과 발포 뒤 시민의 무장저항이 이어졌다는 사건의 순서도 확인됐다. 이를 무시하고 5·18 전체를 폭동이라고 부르면 시민의 폭력만 남기고 쿠데타와 국가폭력을 지우게 된다. 유공자 제도 역시 비판할 수 있다. 심사 기준과 예산, 인정·불인정·취소·환수 통계와 감사 결과는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공직자의 인정 근거도 공익이 큰 범위에서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보훈대상자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일반 피해자의 실명과 부상·구금 기록을 5·18에만 공개하라는 요구는 투명성의 원칙이 아니다. 5·18 피해자만 잠재적인 사칭자로 취급하는 이중기준이다. “5·18은 성역인가?”라는 질문이 문제인 것은 물음표 때문이 아니다. 이 질문 뒤에 이미 반증된 북한군설과 폭동설, 가짜 유공자설을 줄줄이 다시 세우면서도 앞서 나온 답에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방식이 문제다. 질문은 결론을 영원히 보류시키는 주문이 아니다. 답이 틀렸다면 근거를 들어 반박하고, 반박할 수 없다면 그 답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것은 5·18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사실을 다루는 최소한의 규칙이다. 쿠데타와 저항을 구분하고, 가해와 피해의 순서를 뒤집지 않으며,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근거를 내고, 틀린 주장은 철회하는 규칙이다. 이 규칙이 무너지면 어떤 역사적 사실도 물음표 하나로 끝없이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 민주사회는 질문을 금지해서 기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답하고 확인된 사실을 공동의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기억을 지킨다. 5·18은 성역이 아니라 상식이다.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에 시민이 저항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성역까지 필요한가.

코로나19 백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논란은 놀랍게도 코로나19가 진정된 지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백신이 부작용이 많고 그로 인한 피해가 컸다, 개인의 판단이므로 강요해선 안되었다 등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백신에 대한 의혹은 영유아기에 맞아야 하는 백신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져서 이러한 백신들도 의무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창궐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백신을 비롯한 방역 체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은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문제점이 없을 수는 없고, 더 개선할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백신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백신이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나? 코로나 백신에 제기되는 가장 큰 의문은 백신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에 나올 수 있었냐는 것이다. 정상적인 임상시험 절차를 다 밟는다면 그렇게 빨리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제대로 안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실제로 모더나는 바이러스 유전체가 공개(2020년 1월 10일)된 지 66일 만에 1차 임상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9개월째인 2020년 12월 18일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 이때부터 이미 대중에 접종되기 시작했고, 첫 달에 이미 1379만 회분이 접종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2022년 1월 31일에 FDA에서 정식 승인을 받은 것은 바이러스 유전체 공개 후 24개월 만이다. 화이자는 이보다도 조금 더 빨라서 19개월이 걸렸다. 통상 신약 개발에 10년씩 걸리기도 하는 만큼, 9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긴급 승인을 받고, 19개월 만에 정식 승인을 받은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은 지나치게 짧아보인다. 정말로 필요한 절차를 생략해가면서 한 것일까? 다른 백신들은 개발 및 승인에 얼마나 걸렸나 그렇다면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상황이 아닌, 다른 백신들의 개발 속도는 어땠을까? 또 하나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가다실 같은 경우는 개발부터 정식 승인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과거 전염병의 대명사였던 홍역은 9년이 걸렸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유사한 바이러스의 백신은 좀 다르다. 홍콩 독감 백신은 제조용 균주 확보부터 출하까지 66일 걸렸다. H1N1 신종플루 백신은 5개월 걸렸고, H5N1 조류독감은 3년 걸렸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신 플랫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백신은 매번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백신 플랫폼에서 바이러스주만 교체한다든지, 개발 및 생산 과정에 약간의 변형을 가해서 새로 생산하는 것이 쉽다. 특히 코로나19, 독감 등의 바이러스는 같은 플랫폼에서 유행 균주만 교체하도록 생산, 허가 체계까지 갖추어져 있어서 66일 같은 짧은 기간에도 정식 승인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플랫폼 재사용과 mRNA 기술 코로나19는 균주만 교체하면 될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플랫폼들을 적극 활용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모두 mRNA-LNP 기반 플랫폼을 활용했고, 화이자는 암 치료 및 감염병 백신 개발을 위해 mRNA 기술로 이미 개발이 많이 진행된 상태, 모더나는 조류독감 H10N8과 H7N9 백신에서 이미 사람 대상으로 임상 1상을 거친 상태였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 또한, mRNA 기술도 백신 개발 기간을 급속도로 단축시키는 역할을 했다. 과거의 백신 개발과 달리 지금은 바이오인포메틱스를 활용해서 바이러스 유전체를 분석해서 염기서열과 단백질 구조를 바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 설계 단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이렇게 설계한 mRNA를 실제 합성하고 정제하는 기술도 고도로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 유전체만 있으면 백신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임상시험이 빨리 진행된 이유 대개 백신 개발에서 임상시험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충분한 수의 시험 대상자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임상시험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3상 단계에는 대개 수천에서 수만 명의 대상자가 필요하다. 또한, 이 대상자가 백신 접종 후에 실제로 대상 감염병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야 임상시험의 유의성이 충분히 커질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전세계적으로 유행했고 수많은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에 임상에 필요한 대상자를 매우 빠르게 모집할 수 있었고, 이들이 백신을 접종한 후 코로나19에 접촉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검증 기간도 짧았다. 물론 숫자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충분한 기간의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충분한 기간이라는 것이 약의 종류, 질병의 종류에 따라 많이 다르다. 백신의 경우는 생각보다 승인에 필요한 추적 관찰 기간이 길지 않다. 추적 관찰하는 내용에 따라서 기간도 달라지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확인할 사항 일반적인 관찰기간 접종 부위 통증·발열 등 예상 반응 접종 후 7일 예상하지 못한 일반 이상반응 접종 후 28일 중대한 이상반응·특별관심 이상반응 마지막 접종 후 최소 6개월 예방효과와 효과 감소 주 분석 6~12개월, 가능하면 1~2년 이상 매우 희귀한 부작용 기간보다 모집단 규모가 중요하므로 승인 후 지속 감시 여기서 대개 중대한 이상반응이 없고 예방효과가 확인되면 승인을 받기 때문에 6개월에서 1년 사이의 임상시험 기간이면 일반적인 백신이 승인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화이자와 모더나 등의 코로나19 백신은 물리적으로 3상에서 충분한 추적 관찰이 가능한 기간이 확보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임상시험 대상자가 매우 빠르게 모였기 때문에 추적 관찰에 필요한 6~12개월도 일찍부터 확보가 되어서 1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임상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존에 유사한 백신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했고, 임상시험 대상자가 일찍부터 충분하게 모였으며, 막대한 자금과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결합되면서 빠르게 진행된 것이지, 필요한 절차를 빠뜨린 것이 아니다. WHO는 이를 임상 생략이 아니라 병행·가속 개발로 설명한다.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에 걸린다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에 걸린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백신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 어떤 백신도 감염을 100% 막지 못한다. 두 차례 접종한 홍역 백신도 약 97%의 예방효과를 낸다. 백신은 마법 보호막 같은 게 아니다. 세계보건기구도 어떤 백신도 감염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고 설명한다. 그럼 감염을 100% 막지도 못하는데 백신을 왜 맞아야 하나?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원래 백신은 감염을 100% 막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감염병은 한 감염자가 다음 사람에게 평균 한 명 이상 옮길 때 계속 퍼진다. 백신이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보호할 필요는 없다. 충분한 사람이 감염되거나 전파할 가능성을 낮추면, 한 감염자가 옮기는 평균 인원이 한 명 아래로 떨어지고 유행은 줄어든다. 이것이 바로 집단면역이다. 홍역 백신도 100%가 아니지만 높은 접종률로 유행을 막고, 접종할 수 없는 사람까지 간접적으로 보호한다. WHO도 백신으로 형성한 집단면역은 전파 사슬을 끊어 취약한 사람을 보호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돌파 감염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다. 그 돌파 감염의 비율이 얼마인지, 그래서 전파를 잘 막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백신의 효과를 알고 있다. 끝나지 않을 거라던 팬데믹은 끝났고, 백신을 잘 접종한 나라들은 초과사망이 낮았다. OECD는 21년 32개국 연구에서 접종률이 높을수록 초과사망이 낮았다고 보고했고, 유럽의 20년~23년 국가별 시계열 분석에서도 백신 접종률이 낮은 초과사망과 연관된다고 보고했다. 다른 하나는 중증 또는 사망으로 진행할 위험을 낮춘다는 것이다. 백신은 바이러스가 코와 목 점막에 닿는 순간을 언제나 막아 주지는 못해도, 바이러스가 증식해 폐렴, 혈전, 장기 손상으로 이어지기 전에 면역계가 훨씬 빨리 대응하게 만든다. 감염을 피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병의 무게를 바꾸는 것이다. 한국에서 3차 접종 뒤 확진된 사람은 미접종 뒤 확진된 사람보다 중증 또는 사망으로 진행할 위험이 97.5% 낮았고, 2차 접종군의 감소폭은 55.2%였다. 질병관리청 분석 4차 접종도 3차 접종군과 비교해 감염은 20.3% 더 막았지만, 중증은 50.6%, 사망은 53.3% 더 줄였다. 국내 4차 접종 분석 코로나 백신이 감염을 완전히 없애지 못해도 맞을 이유는 이 차이만으로 충분하다. 요컨대,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그것은 정상적인 현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은 여전히 유익하고, 또 코로나19 백신 역시 유익했다고 할 수 있다. 백신의 부작용 앞의 논의처럼 백신의 효과를 인정한다고 해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백신에 제기되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문제는 백신의 부작용이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전국적으로 시행할 때 매일 같이 “백신을 맞고 사망했다”는 뉴스가 떴다. SNS에도 가족과 친척들의 사연이 숱하게 올라왔다. 사망이 아니더라도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 갑자기 특정 질환이 늘었다는 이야기 등 부작용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에 백신의 부작용을 여러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부작용 논란은 더욱 커졌다. 부작용은 가벼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백신을 맞고도 감염되는 문제는 추가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백신을 맞고 심각한 질병을 얻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면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은 크게 줄어들 수 있고, 백신을 의무화하는 정당성도 떨어지게 된다. 모든 백신은 부작용이 있다.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을 검토하기 앞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백신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백신은 면역계를 자극하는 약이므로 접종 부위 통증이나 발열, 피로 같은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모든 접종자에게 부작용이 생긴다는 뜻은 아니지만, 위험이 완전히 0인 백신은 없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백신의 부작용 대부분이 가볍고 며칠 안에 사라지지만,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나 중대한 손상도 매우 드물게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랫동안 사용해 온 백신에도 인과 관계가 확인된 부작용이 있다. MMR 백신은 어린이 3천~4천 명당 약 한 명에게 열성경련을 추가로 일으키고, 로타바이러스 백신은 접종한 영아 2만~10만 명당 약 한 명에게 장중첩증을 일으킬 수 있다. 계절독감 백신도 위험 증가가 관찰되는 해에는 접종 100만 회당 한두 건의 길랭-바레증후군이 추가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MMR 백신 안전성 자료, 로타바이러스 백신 안전성 자료, 독감 백신과 길랭-바레증후군 자료 그럼 왜 이렇게 확인된 부작용이 있는 백신도 계속 사용하는 것인가? 이것을 윤리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백신의 부작용을 백신을 맞지 않았을 때의 위험과 비교해야 한다. 백신을 맞지 않으면 부작용은 피할 수 있지만, 그 대신 감염병에 걸려 중증이나 후유증을 겪고 사망할 위험이 커진다. 앞서 살펴본 백신들을 계속 사용하는 것도 백신이 일으키는 피해보다 백신이 막는 피해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유럽의약품청도 백신의 허가에는 위험이 전혀 없다는 증명이 아니라, 질병을 예방하는 이득이 잠재적 위험보다 훨씬 크다는 증명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피해를 당연하게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백신의 부작용이 매우 심각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로가 확인이 된다면 설령 그 확률이 매우 낮더라도 그 백신은 승인을 받기 어렵다. 아주 위험한 질병에 대한 백신이 아니라면 부작용의 크기와 빈도 모두 매우 작아야 승인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승인을 받은 백신은 모두 그런 기준을 어느 정도 충족한다고 할 수 있다. 백신 맞고 사망에 이를 정도의 부작용이 없다고 단언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낮은 확률이라는 것은 입증되어야 한다. 그래서,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백신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다. 그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까지 확인이 되어야 비로소 백신의 접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백신을 맞고 나서 사망한 사람들 그럼 이제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 살펴보자. 코로나19 백신이 국내에 도입되기 얼마 전쯤부터 독감 백신에 대해 “접종 뒤 사망했다”는 사례가 뉴스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백신 부작용이 크게 주목 받았고, 코로나19 백신 역시 사망을 비롯한 갖가지 부작용 문제가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인과 관계다. 백신 접종 후 사망했다는 말은 시간적 선후 관계 밖에 알려주지 않는다. 백신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근거가 되지 않는 것이다. 백신을 맞고 사망했다고 보고된 경우 대부분이 노인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백신보다는 다른 것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침에 쌀밥을 먹고 나서 사망했다고 해서 쌀밥을 원인이라고 할 수 없듯이, 백신을 접종한 이후에 사망했다고 해서 백신을 범인으로 지목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기저질환이 없고 노인도 아닌 사람들의 돌연사도 많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백신이 유력한 원인이지 않을까? 하지만, 원래도 돌연사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표본 코호트 112만5,691명을 2002~2013년 추적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암·감염·외상 등 명백한 비심장성 원인을 제외한 심정지가 국내에서 연간 8천여건에 이른다. 이 중에서 관상동맥질환·심근병증·판막질환 등 알려진 주요 심장 원인도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연간 1천건 이상이다. 그러니까, 백신과 상관 없이 원래도 원인 불명의 사망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초과 사망 그럼 원래도 돌연사가 종종 있는 일이니까 백신 접종 후 기저질환 없는 사람의 돌연사도 그냥 그런 걸로 보고 무시해도 될까? 그렇지 않다. 부검 등의 분석을 통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혀내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인과 관계 분석까지 가지 않더라도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초과 사망 통계를 보면 된다. 초과 사망이란, 실제로 특정 기간에 실제로 발생한 사망자와 과거 추세로 예상되는 사망자의 차이이다. 이 초과사망이 높다면 백신의 부작용이 존재한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는 개별 사망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이 시행되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초과 사망이 거의 없다면 부작용이 크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주 확정적인 결론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국가 차원에서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지를 결정하는데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지표다. 이는 백신이 아니라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의 위험성을 평가하는데도 쓰였던 중요한 지표다. 코로나19가 21세기 최악의 전염병으로 꼽히는 것도 2020~2021년 단 2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1500만명에 가까운 초과사망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10만명당으로 따지면 188명이 사망했다. 한국은 10만명당 19명으로 압도적으로 낮은 초과사망률을 보였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다른 사망 원인보다 높은 사망률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의 초과 사망은 어땠을까? 코로나19백신안전성연구센터가 건강보험·예방접종 자료를 이용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전체 사망과 뚜렷한 연관성이 없었다고 한다. 접종 후 10일까지 고려한 시계열 분석에서도 동일하다. 그렇다면 접종 여부가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볼 수 있겠다. 독감 백신도 살펴보자. 질병관리청이 2015~2020년 65세 이상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접종자의 조사 기간 사망률이 접종자보다 6.2~8.5배 높았다. 초과 사망이 아니라 오히려 사망이 줄어든 것이다. 독감에 취약한 고령자 대상 연구이니만큼 이것은 기대했던 백신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이 연구는 거기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 중환자, 입원환자, 임종에 가까운 사람 등은 접종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종자들은 더 건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점을 보완하려면 동일한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해야 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연구는 없다. 어쨋든 제한적인 연구들이지만 이 연구들만 봐도 백신의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겠다. 개별 사례 분석 결과 초과 분석은 통계적으로 보는 것이지만 사실 더 정확한 것은 개별 사례에서 인과 관계 분석을 하는 것이다. 한국에만 코로나19 백신의 부작용은 신고된 건수만 48만건이 넘는다. 그리고 이 중에서 98,100건은 피해보상 신청이 접수되었고, 이 중에 24,618건은 보상이 결정되었다. 1회 이상 접종한 사람이 4,489만명인데 이 중 2만명 넘게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보상을 받았으니 0.055% 정도가 보상을 받은 셈이다. 보상 사례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대부분은 발열·두통·근육통·접종 부위 통증·알레르기 반응처럼 비교적 가벼운 사례인데, 중증 사례만 보면 다음과 같다. 아나필락시스: 검토 2,377건 중 884건 인과성 인정 혈소판감소성 혈전증: 의심 사례 215건 중 4건 인과성 인정 심근염: 603건이 진단에 부합 심낭염: 244건이 진단에 부합 심근염과 심낭염은 인과성 인정이 아니라 진단에 부합한다고 하는데, 이는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폭넓게 보상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 중 아나필락시스는 알러지 반응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외에도 거의 모든 백신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미국 백신안전데이터링크가 여러 백신 2,510만 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0만 회당 1.31건의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한다고 한다. 아나필락시스는 접종자가 아니라 접종회수 단위로 측정하는데, 국내에서는 100만회당 6회 정도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평균적인 백신에 비해 높은 수치이긴 하나, 심각한 수치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백신에 나타나는 부작용인 아나필락시스 외에는 혈전증이 먼저 인과성이 확인되었다. 다만 이는 4건에 불과해서 역시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심근염과 심낭염에 대해서는 보상 시점에는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보상부터 실행했는데, 그 이후에 CDC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인과 관계가 확인되었다. 그 이후 백신 접종 지침도 변경되어서 백신 접종 후 3주 이내 심근염·심낭염이 발생한 사람에게는 이후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원칙적으로 피하도록 권고한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코로나19 백신은 부작용이 분명히 존재하고 평균적인 백신에 비해서는 다소 부작용이 많은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며 여전히 질병 예방의 압도적인 이득에 비해 부작용은 작다고 말할 수 있다. 곰팡이 백신 논란 코로나19 백신이 효과가 좋았고 부작용도 크지 않다고 해서 문제 없는 게 아니다. 이런 백신을 안전하게 유통하고 접종하는 절차도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백신 이물질 신고가 드러나면서 곰팡이가 포함된 백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285건 접수됐고, 이 가운데 곰팡이·머리카락·이산화규소 등 127건이 ‘위해 우려 이물’로 분류되었으며 곰팡이 신고가 1건 있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백신은 곰팡이 백신이었다는 논란이 퍼져나갔다. 이것은 유통과 접종 절차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모두 기록되고 접종 보류 및 폐기가 된 사례들이다. 곰팡이 사례는 질병관리철에 따르면 해당 바이알은 모두 격리돼 접종되지 않았고, 같은 제조번호 전체가 오염된 사례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사례는 그런 실수가 체계적으로 감지되고 처리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안전장치가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곰팡이 발견된 사례에서 질병관리청은 이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통보하지 않았고 이외에도 이물 신고가 접수된 접종분과 동일 제조번호의 다른 백신 약 1,420만 회분이 별도의 보류 없이 접종되었다. 그렇다고 곰팡이가 든 백신 1,420만 회분이 접종됐다는 뜻은 아니다. 질병관리청은 이물이 발견된 해당 바이알은 모두 격리돼 접종되지 않았고, 같은 제조번호 전체가 오염된 사례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곰팡이가 발견된 바이알은 주사바늘이 고무마개에 꽂힌 채 회수됐다. 질병관리청은 제조사 조사 결과를 근거로 제조 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접종 준비를 위한 원액 희석 과정에서 곰팡이가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반면 감사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추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제조 과정의 오염 가능성과 위해 정도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감사원의 말처럼 제조 과정의 오염 가능성을 확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조금 더 엄정한 조사 과정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곰팡이 신고가 1건에 불과하고 동일 제조번호의 다른 백신에서는 나타나지 않은 점을 생각하면 백신 원액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주장도 일상적인 수준에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해당 접종분이 접종되지 않고 폐기되었다는 것도 안전장치가 잘 작동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곰팡이 신고가 백신 전체의 신뢰도를 낮추는 사고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백신에 대한 의심이 많은 상황에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조사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의무 접종이 필요했나? 살펴본 바와 같이 코로나19 백신과 그 접종 과정은 충분히 효과적이고 안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의무화해야 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한국은 접종을 법으로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식당·카페와 학원 이용에 접종증명 또는 음성확인서를 요구했다. 강제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방역패스는 강력한 접종 압박이어서 사실상 의무화했다고 할 수 있다. 접종을 권할 이유는 있었다. 2022년 1월 질병관리청 자료에서 18~59세 위중증 환자의 83.3%, 사망자의 87.7%는 접종 미완료자였다.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 이후부터는 사망자도 급속하게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의 집단 면역 효과를 만들기 위해서 의무 접종은 어느 정도 필요했다고 여겨진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탈리아는 한국의 백신 패스와 유사한 그린패스를 모든 공공·민간 사업장 출입에 요구했다. 직장 전체까지 포괄했다는 점에서 한국보다 광범위하게 의무화한 것이다. 프랑스는 16세 이상이 식당·술집·문화·여가시설·박람회·장거리 교통을 이용하려면 원칙적으로 백신 또는 회복 증명을 제시해야 했다. 음성검사만으로는 대부분 이용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백신패스보다 좀더 강했다. 오스트리아는 아예 접종 의무를 법률로 부과했다. 백신 미접종자에게 별도의 봉쇄와 2G 규제를 적용한 데 이어, 2022년 2월에는 의료적 예외 등을 제외한 18세 이상 주민 전체에 접종 의무를 법률로 부과했다. 물론 미국처럼 의무화를 하지 않은 나라도 있다. 하지만 미국도 주에 따라 달랐는데, 뉴욕시는 Key to NYC를 통해 실내 식당·헬스장·공연 및 오락시설의 이용자와 종사자에게 접종 증명을 요구했다. 이후에는 거의 모든 민간 사업장 근로자에게 접종 의무를 확대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실내 식당·술집·클럽·체육시설과 대규모 실내행사에 접종 증명을 요구했다. 해당 시설에서는 음성검사로 백신 증명을 대체할 수도 없었다. 이처럼 모든 나라가 동일한 정도로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나라가 의무화를 했고, 의무화를 하지 않더라도 백신 접종을 강하게 권장했다. 그리고 이처럼 코로나19 백신이 광범위하게 접종한 것이 코로나19의 위험과 전파를 모두 크게 낮추고 결과적으로 팬데믹을 종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유와 선택권은 소중하니까 사람들이 좀더 죽어나가더라도 의무화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도 할 수 있다. 이는 훨씬 깊은 윤리적, 정치적 토론이 필요한 문제다. 이것은 이 기사의 범위를 넘기 때문에 의무 접종이 반드시 필요했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한다. 다만, 백신 개발과 접종으로 이어진 전세계적인 노력이 모여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할 수는 있다. 현대 의학에 대한 신뢰 살펴본 바와 같이 코로나19 백신에 쏟아진 많은 의혹들이 대부분 모든 백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며, 백신 자체의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백신을 통해 많은 질병을 정복하거나 버텨왔다. 코로나19 백신 역시 비난과 의심을 받기에는 문제도 적었고, 오히려 짧은 기간에 전지구적 재난에 맞서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찬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판단을 내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주장을 듣고 수많은 자료를 보고 분석해야 했다. 그런데, 기자가 아닌 일반인이 백신을 믿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조사와 연구를 해야 할까?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 마당에 백신이 믿을 만한지 아닌지 이렇게 일일이 따져가면서 맞아야 현명한 것일까? 현대 의학은 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발전되어 있고, 또 믿을 만하게 동작한다. 한 명 한 명의 의사의 소견은 틀릴 수도 있지만, 수많은 동료 리뷰와 임상시험을 거친 의학계 전체의 권고는 신뢰도가 매우 높다. 백신의 경우도 어떤 백신은 의무이지만 또 어떤 백신은 의무가 아닌데, 이런 결정 또한 대부분 의학계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그래서, 백신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의학계를 좀더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개개인이 모두 이 기사에서 한 것처럼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사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처럼 집요하게 자료들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한두 가지 자료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에 쏟아지는 많은 의혹이 한두 가지 단편적인 사실들만 보고 판단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다음날 사망했다"고 하면 코로나19 백신이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문제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판단 과정을 많은 전문가들이 해서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는데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판단하는 전문가들을 믿는 것이 좀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의사를 절대적으로 믿으라는 뜻은 아니다. 의사 개인보다는 현대 의학이 작동하는 방식을 믿는 것을 첫번째 판단 기준으로 삼아보자는 것이다. 만약 의학계의 권고가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럽다면 그때는 개인이 직접 나서서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해서 두번째 판단 기준으로 삼아도 된다. 다만, 이왕 그렇게 조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한두 가지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자. 앞으로도 인류는 다양한 감염병을 맞게 될 것이고 또다시 전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한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럴 때마다 비과학적인 논란으로 인류의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는 좀더 건설적인 논의로 발전해가길 바란다. 의학계에 있는 사람들도 대중들의 의혹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국민적인 이해를 높여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길고양이는 조류 생태계를 위협하는가?

최근 조류 유튜버 ‘새덕후’가 새를 잡아먹는 고양이를 다룬 영상을 공개하면서 그동안 쌓여온 길고양이 갈등이 다시 폭발했다. 영상 속 장면은 분명하다. 고양이는 새를 사냥하고 죽인다. 그 수가 한두 마리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이를 근거로 길고양이가 한국의 조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논란이 된 영상과 인터뷰

제습기에 생기는 물은 깨끗한가?

제습기 물통에는 하루에도 몇 리터씩 맑은 물이 찬다. 그런데 이 물을 싱크대에 버린다는 말에 “더러운 물을 음식을 다루는 곳에 붓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공기 중 먼지와 곰팡이 포자가 섞였을 수 있고, 물통 안에서 세균도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설거지와 식재료 세척에 쓰는 수돗물이 아니라 배수구로 흘려보낼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반론도 있다. 쟁점은 제습기 물을 마셔도 되느냐가 아니다. 이 물이 싱크대에 버리면 안 될 만큼 위험한 오수인지, 버리는 과정에서 싱크대와 주방을 의미 있게 오염시키는지를 따져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습기 물은 음용수만큼 깨끗하지 않지만, 싱크대에 버려도 된다. 실제로 여러 제조사가 싱크대나 욕조를 정상적인 배수 장소로 안내한다. 다만 물통의 물을 싱크볼 전체에 끼얹기보다 배수구 가까이에서 천천히 붓고, 눈에 보이는 찌꺼기가 남으면 수돗물로 흘려보내면 충분하다. 맑아 보여도 깨끗한 물은 아니다 압축기식 제습기는 습한 공기를 차가운 냉각핀에 통과시킨다. 공기가 이슬점 아래로 식으면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히고, 물받이와 배수로를 거쳐 물통에 모인다. 이 과정 때문에 제습기 물에는 수돗물보다 칼슘·마그네슘 같은 용존 미네랄이 적은 경우가 많다. 2024년 오키나와에서 약 1년 반 동안 조사한 제습기 응축수 연구는 연구진이 측정한 성분의 평균 합계가 제습기 물에서 11.7㎎/L, 수돗물에서 119.8㎎/L였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제습기 물의 주요 성분에는 총유기탄소 7.0㎎/L와 암모늄 3.8㎎/L가 포함됐다. 미네랄이 적다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제습기는 공기만 골라 빨아들이지 않는다. 필터를 통과한 미세먼지와 피부 각질, 곰팡이 포자, 실내의 휘발성 물질이 냉각핀에 붙었다가 물로 씻겨 내려올 수 있다. 휴대용 제습기의 응축수를 실내 오염물질 채집 수단으로 활용한 2020년 연구는 서로 다른 실내에서 얻은 물에서 140종이 넘는 반휘발성 유기화합물을 확인했다. 모두 위험한 농도였다는 뜻은 아니지만, 제습기 물이 그 방의 공기와 장치 상태를 반영한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냉각핀과 물받이, 물통은 반복해서 젖기 때문에 미생물이 자랄 수도 있다. 먼지가 영양분이 되고 물이 오래 고이면 표면에 생물막이 생긴다. 제조사 프리지데어도 작은 먼지 입자가 제습기 물에 모이고, 이것이 슬러지와 조류를 만들어 배수 호스를 막을 수 있다며 주기적인 세척을 안내한다. 그러므로 제습기 물을 “깨끗한 물”로 여겨 마시거나 요리에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마실 수 없다는 말과 싱크대에 버릴 수 없다는 말은 다르다. 생수도 아니지만, 분뇨나 감염성 폐기물 같은 고위험 오수도 아니다. 싱크대는 원래 배수 장소다 가장 직접적인 근거는 제습기의 설계와 사용설명서다. 하이얼은 물통을 꺼내 싱크대나 욕조에 비우라고 안내한다. 미디어의 제습기 설명서도 물통을 직접 비우거나 호스를 연결해 싱크대 등 배수구로 연속 배수하도록 설명한다. GE도 제습기 호스를 바닥 배수구에 연결하는 것을 정상적인 사용법으로 제시한다. 응축수가 싱크대에 버리면 안 될 정도의 위해물이라면 제조사가 이를 일상적인 배수 방법으로 안내하기 어렵다. 주방 싱크대 자체도 무균 공간이 아니다. 생고기와 채소의 흙, 음식물 찌꺼기, 손과 수세미에서 나온 미생물이 계속 들어오며 특히 배수구에는 생물막이 형성된다. 미국 가정의 주방 네 지점을 조사한 2022년 연구에서도 식품매개 병원체가 포함된 균속은 싱크대 배수구에서 가장 자주 검출됐다. 이 사실이 싱크대 위생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제습기 물이 완벽히 깨끗해야만 싱크대에 버릴 수 있다는 기준을 적용한다면, 음식물 국물이나 걸레를 헹군 물도 버릴 수 없게 된다. 중요한 것은 싱크볼과 배수구를 구분하는 일이다. 싱크볼은 식재료와 식기가 닿을 수 있어 사용 뒤 씻어야 하는 표면이고, 배수구는 생활하수를 흘려보내도록 만든 곳이다. 그러므로 제습기 물을 싱크볼에 보관하거나 그 물로 싱크대를 씻는 것과 배수구에 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다. 물통의 물을 배수구로 보내는 것은 싱크대의 용도에 맞는다. 제습기 한 통의 물이 가정의 싱크대 미생물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직접 측정한 연구는 찾기 어렵다. 따라서 오염이 전혀 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조사가 싱크대 배수를 표준 사용법으로 인정하고, 싱크대가 이미 다양한 생활오수를 처리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을 합치면 제습기 물만 특별히 화장실에 버려야 할 근거는 없다. 남는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버릴 때 주변으로 튀는 물이다. 문제는 버리는 장소보다 튀기는 방식이다 병원 싱크대를 형광물질로 시험한 2022년 연구에서는 물질을 배관의 물막이와 연결관에 넣었을 때 싱크대 밖에서 물방울이 검출되지 않았다. 반면 배수구 표면에 놓고 물이 떨어지게 하자 대부분의 싱크에서 주변으로 튀었다. 병원에서 병원균 전파를 연구한 결과이므로 가정의 위험도를 그대로 나타내지는 않지만, 배수구에 강한 물줄기가 직접 부딪힐 때 튐이 생긴다는 물리적 경로는 같다. 따라서 물통을 높이 들고 콸콸 쏟을 이유는 없다. 배수구 가까이에서 물통을 기울여 천천히 붓고, 싱크볼에 먼지나 물때가 남았다면 수돗물로 짧게 헹군다. 바로 옆에 씻어 둔 식기나 손질 중인 식재료가 있다면 먼저 치우는 편이 좋다. 이것은 제습기 물이 특별히 위험해서가 아니라 어떤 오수든 음식에 튀지 않게 하는 기본적인 주방 위생이다. 물을 버릴 때마다 싱크대를 소독제로 닦을 필요는 없다. 눈에 보이는 찌꺼기나 냄새가 없다면 수돗물로 흘려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통에 미끈한 막, 검은 점, 덩어리진 찌꺼기나 악취가 있다면 싱크대보다 제습기 관리 상태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 물은 배수구에 버리고 물통과 필터·배수로는 제품 설명서에 따라 세척해 완전히 말린다. 싱크대가 막혀 물이 고이거나 역류하는 상태라면 예외다. 이때는 제습기 물의 문제가 아니라 배수구 속 오염물이 싱크볼로 되올라와 주변에 튈 수 있는 것이 문제다. 먼저 막힘을 해결하고, 그동안은 변기나 욕실 배수구처럼 정상적으로 내려가는 곳을 이용하면 된다. 물통의 상태는 청소 신호다 물을 어디에 버리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물통을 얼마나 오래 방치하느냐다. 며칠씩 고인 물은 방금 생긴 응축수보다 미생물이 증식할 시간이 길다. 물통은 자주 비우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남은 물을 제거해 말린다. 연속 배수 호스도 계속 물이 흐른다고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으므로 제조사 지침에 맞춰 세척한다. 제습기 물이 투명하더라도 물통 청소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약간의 먼지가 보인다는 이유로 물통 전체를 위험한 폐수처럼 취급할 필요도 없다. 냄새와 생물막은 제습기를 청소하라는 신호이지, 싱크대를 폐기 장소에서 제외하라는 신호가 아니다. 판정은 간단하다. 제습기 물은 먹거나 몸에 쓰는 깨끗한 물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가정용 제습기에서 모인 물은 싱크대 배수구에 버려도 된다. 주변 식기와 음식물을 치우고 배수구 가까이에서 천천히 부은 뒤, 찌꺼기가 남으면 수돗물로 헹군다. “더러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배수구에도 버리면 안 되는 물이 되지는 않는다.

투표율 조작 사건, 부정선거의 증거인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조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선관위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는데, 조사 과정에서 투표율을 임의로 수정한 일이 드러났다. 이에 부정선거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건이 정말 부정선거의 증거인지 아닌지 살펴보자.

수건, 몇 번 쓰고 세탁할까

최근 SNS에서 수건을 한 번 쓰면 바로 세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위생상 한 번 쓴 수건을 또 쓰면 안되고, 다른 가족이 사용한 수건을 재사용하는 것도 더럽다는 것이다. 재사용의 범위도 논란이다. 손만 닦아도 바로 세탁한다는 극단적인 사례에서부터 손은 괜찮지만 얼굴 닦으면 세탁해야 한다, 샤워하고 닦으면 세탁해야 한다, 샤워도 깨끗하게 몸을 씻는 건데 왜 바로 세탁해야 하냐 등등의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수건 세탁 주기는 얼마일까? 언제부터 위생에 문제가 생기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해 과학적인 증거들, 그리고 여러 기관의 공식적인 권고 사항들을 확인해서 믿을 만한 권고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수건을 쓰고 나면 세균이 폭증한다? 수건을 자주 세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근거는 수건을 쓰고 나서 조금만 지나도 세균이 폭증한다는 것이다. 멸균한 목욕수건을 하루 한 번 사용하고 욕실 걸이에 보관한 실험에서는 6일 동안 세균이 22배 증가했다. 이는 한 번 사용한 것이 증식한 것 뿐 아니라, 매일 사용한 것이 누적된 결과이다. 이처럼 일상적인 조건에서의 실험이 아니라 한 번 사용하고 밀폐 봉투에서 24~26℃로 24시간 보관한 실험에서는 1500배 증가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데, 1500배 같은 숫자가 많은 사람에게 공포심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밀폐되지 않고 공기 중에서 자연 건조되기 때문에 이처럼 많이 증가하지는 않고, 실생활에 가까운 실험에서는 대체로 수십 배의 증가가 관찰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손수건을 3일 사용한 뒤 세탁하고, 24시간 실내 건조를 모사한 실험에서도 26배씩 세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하고 자연 건조시키는 것과 별 차이 없지 않은가? 물론, 같은 조건에서의 실험이 아니고 세균 측정 기준도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용한 수건이 아니라도 세균은 존재하고 또 증식할 수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래서, 수건을 사용하면 세균이 많이 증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폭증한다고까지 말하려면 젖어 있는 상태에서 온도도 적당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건의 세균은 어느 정도로 해로운가? 수건에서 검출되는 세균의 양이 수백만 마리니 수천만 마리니 하는 이야기도 많다. 실제로 욕실에서 일반 면 목욕수건을 7일간 사용한 실험에서는 세균이 700만~2600만 CFU/cm2(세균은 마리보다는 CFU라는 단위를 많이 사용한다)가 검출되었다고 한다. 일단 숫자가 매우 크니까 엄청나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 숫자가 어느 정도로 큰 숫자일까? 비교를 위해 우리 손에 있는 세균의 규모를 보자. 뉴욕의 건강한 성인 224명의 손 전체를 씻어 배양한 연구에서는 씻기 전 평균 약 52만 CFU가 한 손에서 검출됐다. 건강한 젊은 여성 50명의 손 전체에서 세균을 회수한 연구에서는 호기성 세균이 평균 약 71만 CFU였고, 개인별로는 2만 6000~2290만 CFU까지 벌어졌다. 일본 대학생 24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한 손당 평균 약 200만 CFU가 검출됐다. 앞서 소개한 수건 연구는 측정 범위도 다르고 기준도 다르지만, 어쨋든 그냥 평소에 우리 손에 수십만에서 수천만 CFU의 세균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건에 세균이 많이 증식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손에 원래 있는 세균의 양에 비해 엄청나게 큰 세균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손을 씻고 수건에 닦는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묻은 세균들은 크게 줄어든 상태이고 주로 우리 손에 항상 살던 상재균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이런 상재균들은 우리 몸에 해를 끼치기보다는 피부를 보호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이 더 많다. 그럼 우리 손에 원래 있으면서 별로 해롭지 않던 세균이 증식해서 다시 손에 묻게 되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일일까? 일상적으로 몸을 깨끗이 씻고 나서 수건에 닦은 경우, 수건을 매개로 한 감염원이 건강한 사람에게 감염병을 유발할 정도의 위험이 있다고 볼 근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매일 샤워하고 자주 손 씻는 사람들이 수건 좀 여러 번 쓴다고 건강에 악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수건과 실제 감염이 만난 순간 물론 그렇다고 수건 위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수건 위생이 문제가 되는 조건들이 있다. 2000년 미국의 한 대학 미식축구팀에서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MRSA) 피부 감염이 선수 10명에게 발생해 7명이 입원했다. CDC의 유행 조사는 잔디에 쓸리거나 면도하다 생긴 상처와 함께, 세탁하지 않은 목욕수건을 선수들이 돌려 쓴 일을 가능한 전파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 사례에는 평범한 목욕 뒤의 재사용과 다른 조건이 겹쳐 있었다. 누군가의 피부에 MRSA가 있었고, 여러 사람이 같은 수건을 썼으며, 격한 운동으로 피부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병원균과 이동 수단, 침입 경로가 모두 갖춰진 것이다. 가정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지역사회 MRSA 피부 감염을 앓은 어린이가 있는 집을 1년 동안 추적한 연구는 사람과 반려동물, 집 안 표면에서 균을 반복 채취해 균주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살폈다. 그 결과 목욕수건 공유는 같은 균주가 다른 가족에게 전파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었다. 연관성은 크지 않았지만 통계적으로 확인됐다(오즈비 1.25, 95% 신용구간 1.01~1.57). 곰팡이성 피부 질환도 예외가 아니다. 백선 환자가 있는 미국의 20만여 가정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1년 안에 다른 가족까지 백선 진단을 받은 가정이 8.5%였다. 이 연구가 수건을 전파 원인으로 특정한 것은 아니지만, CDC는 백선이 피부 접촉뿐 아니라 함께 쓰는 수건과 침구를 통해서도 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미 감염원에 노출이 된 사람이 수건을 여러 사람이 돌려 쓰는 경우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공신력 있는 기관들의 권고안 살펴보기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종합해서 많은 기관에서 수건 위생에 대해 내놓은 권고안이 있다. 이 권고안들을 살펴보자. 기관 목욕수건 권고 조건과 권고의 성격 미국 CDC 고정된 횟수 없음 손 닦는 수건은 재사용할 수 있으며, 눈에 띄게 더러워지거나 습기로 곰팡이가 생기기 전에 교체한다. 휴스턴 메소디스트병원 3회 사용 후 피부과 전문의가 제시한 기준이다. 몸을 씻는 데 쓰는 작은 수건과 운동용 수건은 한 번 쓸 때마다 세탁한다. 로마린다대학교 3~4회 사용 후 완전히 마르는 것이 전제다. 잘 마르지 않으면 2회, 감염·상처·체액 노출이 있으면 1회로 줄인다. 컬럼비아대학교 3~5회 사용 후 또는 주 1회 수건이 오래 젖어 있거나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으면 더 자주 세탁한다. 클리블랜드클리닉 적어도 주 1회 습도가 높으면 주 2~3회, 피부 장벽이 손상됐거나 아플 때는 더 자주 세탁한다. 헨리포드헬스 약 주 1회 감염내과 전문의가 제시한 기준으로, 수건이 잘 마르지 않는 환경에서는 주기를 줄인다. American Cleaning Institute(ACI) 3~5회 사용 후 미국 세정제품 업계단체의 생활 세탁 기준이다. 임상 지침은 아니다. 유타주립대학교 3~4회 사용 후 대학의 생활교육 자료지만 숫자는 ACI의 권고를 옮긴 것이다. Consumer Reports 3~5회 사용 후 ACI의 권고에 자체 세탁 전문가와 환경미생물학자의 의견을 덧붙였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3~5회 사용 또는 주 1회 세탁을 기본으로 삼고, 잘 마르지 않을수록 주기를 줄이라는 방향은 같다. 다만 병원과 대학의 숫자도 공식 감염관리 지침이라기보다 전문가가 제시한 생활 속 기준에 가깝다. ACI의 3~5회 권고 역시 여러 매체에 반복해서 인용됐으므로 이를 모두 독립된 권고로 셀 수는 없다. 그래도 공통된 메시지는 분명하다. 건강한 사람이 자기 수건을 완전히 말려가며 몇 차례 재사용하는 것은 허용하되, 지나치게 오래 쓰지는 말라는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3~5회 사용 후 세탁과 주 1회 세탁이 겹쳐 있는데, 이는 주로 미국 기관들의 권고이기 때문에 미국인의 평균적인 샤워 주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준으로 한다면 주 2회 세탁이 적절할 것이다. 결론 이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건강한 사람들의 경우라면 여러 기관들의 권고안대로 3~5회까지 자연 건조시켜가면서 사용하는 것은 문제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수건을 1회만 쓰고 바로 세탁하는 것은 다소 과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기본적인 세탁 주기보다 좀더 자주 세탁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미 감염원에 노출된 사람이나 피부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좀더 자주 세탁하는 것이 좋다. 또한, 가족 구성원 중에 이런 경우가 있으면 수건을 따로 쓰는 것이 좋다. 그 외에도 눈으로 보일 정도의 오염원이 묻었다거나, 피나 다른 체액이 묻었다면 바로 세탁하는 게 좋다. 냄새가 나는 경우도 세균이 많이 증식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기본 주기보다 좀더 자주 세탁하는 것이 좋다. 한 가지 명확하게 말하기 힘든 부분은, 가족 중에 피부 감염이 있는 사람이 없고 다 건강할 때도 수건을 공유하는 것이 해로운지 아닌지이다.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를 찾기 힘든데, 수건을 공유할 때 생기는 문제는 대부분 감염원이 있는 경우였고, 일상적인 수건 공유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3~5회라는 사용 횟수 내에서 공유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균이라는 게 눈에 안 보이다보니 그 위험성을 무시하기도 쉽지만, 반대로 과장하기도 쉽다. 어쨋든 우리는 세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세균에 주의해야 하지만 무균 상태를 추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위생의 목적은 건강을 지키고 시각적, 후각적 청결 유지를 통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이므로, 이 목적이 달성되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노력의 크기와 적절하게 저울질해서 위생 전략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최신 의학 정보를 통해 보는 식이지침

한국 사람들은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지만, 잘못된 정보가 많이 유통되고 있고 몇몇 식이요법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추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공신력 있는 기관들조차 건강식의 기준을 두고 엇갈린다. 2026년 1월 미국의 2025~2030 식이지침은 “진짜 음식을 먹으라(Eat Real Food)”며 단백질과 동물성 식품을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날 미국심장협회는 새 지침이 붉은 고기·버터·소금 섭취를 늘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강한 식사가 무엇인지를 두고 미국 정부와 심혈관질환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기관이 같은 날 다른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참여한 식이지침들에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고, 논란이 있는 것들도 학술적인 자료가 많이 나와 있어서 어느 정도 검증이 가능하다. 그래서, 주요 기관들의 식이지침을 토대로 현 시점에 의학적으로 권장할 만한 식이지침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진짜 음식”을 먹어라. 진짜 음식? 그럼 가짜 음식도 있다는 것일까? 이 말은 가짜 음식의 반대말이라기보다 초가공식품의 반대말에 가깝다. 가능한 한 미가공 식재료, 또는 최소 가공 식재료를 통해서 요리한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2025~2030 식이지침에서 진짜 음식(real food)를 강조하면서 이 개념이 재조명되고 있는데, 저 식이지침 자체는 여러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진짜 음식의 가치를 널리 알렸다는 점은 대부분의 의사, 의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이 지침은 상세한 식이지침을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 많은 지침을 매일 생각하면서 식사를 준비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유용하다. 복잡한 영양 문제를 고려할 필요 없이, 가공되지 않은 식재료로 조리된 식사를 매 끼 먹기만 해도 괜찮은 식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초가공식품과 관련한 실험 결과도 어느 정도 이를 뒷받침한다. 성인 20명을 대상으로 2주간 실험한 입원 시험에서 참가자들은 초가공식품 위주로 먹을 때 하루 약 500㎉를 더 섭취하고 체중이 약 0.9㎏ 늘었다. 비가공 식단을 먹을 때는 체중이 약 0.9㎏ 줄었다. 2025년 과체중·비만 성인 55명을 대상으로 한 8주 교차시험에서도 두 식단이 모두 영국의 건강식 지침을 충족했지만, 최소가공 식단에서 체중이 약 2.1% 줄어 초가공 식단의 약 1.1%보다 감소 폭이 컸다. 하지만, 장기간의 실험에서는 다소 결과가 약하다. 비만 성인 148명이 열량을 줄이면서 초가공식품도 제한하도록 한 12개월 무작위시험에서는 열량만 줄인 집단보다 체중이 조금 더 감소했지만 연구진은 그 차이가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했고, 다른 대사 지표에서도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진짜 음식과 초가공식품을 직접적으로 비교한 실험의 숫자도 아직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아직 진짜 음식을 먹으라는 지침은 완전히 식습관을 기댈 만한 지침은 될 수 없다. 전체적인 방향성에서 가공이 적게 된 음식을 선호하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정도로 알아두면 좋겠다. 통곡물을 먹어라 저탄고지, 황제 다이어트, 카니보어 등, 탄수화물의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는 식이지침들이 많다. 하지만, 탄수화물 또한 필수 영양소이고, 탄수화물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에너지원으로서의 효율이 단백질이나 탄수화물보다 좋기 때문에 뇌를 많이 사용하는 일을 하거나, 고강도 운동을 할 때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건강에서 근육의 중요성이 매우 높은데, 그 근육을 만들려면 근육의 재료인 단백질 뿐 아니라, 근육을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하게 해주는 탄수화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식이섬유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탄수화물은 식이섬유의 중요한 공급원이기 때문에 탄수화물 없이 충분한 식이섬유를 섭취하기는 쉽지 않다. 장내미생물은 식이섬유를 분해서 단쇄지방산을 만드는데, 이는 혈압·당뇨·염증 조절 및 장 점막 건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완전히 탄수화물을 끊고 케톤식을 하는 경우에도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닥터딩요의 # 탄수화물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이유에서 좀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탄수화물을 줄이는 게 아니라 나쁜 탄수화물을 줄이고 좋은 탄수화물을 먹는 것이다. 좋고 나쁨을 가르는 것은 탄수화물이 어떤 음식에 들어 있느냐다. 줄여야 할 것은 첨가당이 많이 든 음료와 간식, 정제곡물에 치우친 식사다. 반대로 통곡물·콩·채소·과일처럼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은 충분히 먹어야 한다. 첨가당은 섭취량 자체를 줄이고, 정제곡물은 통곡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곡물은 도정할수록 겨와 배아가 제거되면서 식이섬유와 여러 미량영양소가 줄어든다. 흰쌀밥에는 현미·귀리·통보리 등을 섞고, 흰빵과 면은 통밀 제품으로 바꾼다. 통곡물을 기존 식사에 더 얹는 것이 아니라 정제곡물을 대신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부 바꾸기 어렵다면 소화와 입맛에 맞춰 비율을 서서히 높이면 된다. 세계보건기구의 탄수화물 지침도 탄수화물의 양보다 질을 강조하며, 탄수화물을 주로 통곡물·채소·과일·콩류에서 얻도록 권한다. 성인의 식이섬유 목표는 하루 25g 이상이다. 전향적 연구를 종합한 2023년 분석에서도 통곡물을 많이 먹는 사람은 심혈관질환과 모든 원인에 따른 사망 위험이 낮았다. 여러 연구와 식이지침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만큼, 매일 먹는 주식을 통곡물로 바꾸는 것은 탄수화물의 질을 높이는 가장 분명한 출발점이다. 채소·과일·콩·견과류의 중요성 주식을 통곡물로 바꿨다고 식사가 충분히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채소는 매 끼니 먹고, 과일은 주스보다 통째로 먹는다. 콩과 두부는 반찬이나 단백질 식품으로 자주 선택하고, 소금과 설탕을 더하지 않은 견과류도 곁들인다. 채식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채소·과일·콩·견과류가 식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하라는 것이다. 건강하다고 평가받는 식단은 이름이 달라도 이 식품들을 공통으로 강조한다. 미국 성인 10만5천여 명을 최장 30년 추적한 2025년 연구에서는 과일·채소·통곡물·콩·견과류와 불포화지방이 풍부한 식사를 오래 유지한 사람이 70세가 되었을 때 신체·인지·정신 건강이 모두 양호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식품들을 많이 포함하는 DASH 식단의 임상시험에서도 혈압과 여러 심혈관 위험요인이 개선됐다. 네 식품군을 같은 양으로 먹거나 매번 무게를 잴 필요는 없다. 끼니마다 채소 반찬을 충분히 놓고, 하루 중 과일을 챙기며, 콩·두부와 견과류를 자주 먹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과일과 채소가 부족한지 가늠하려면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하루 400g 이상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지방은 종류가 중요하다 지방은 무조건 적게 먹기보다 종류를 바꿔야 한다. 버터·라드·지방이 많은 육류처럼 포화지방이 많은 식품은 줄이고, 견과류·씨앗·생선과 콩기름·카놀라유·올리브유처럼 불포화지방이 풍부한 식품을 선택한다. 튀김과 제과류 등에 들어 있는 산업형 트랜스지방은 가능한 한 피한다. 세계보건기구의 지방 지침은 포화지방을 하루 섭취 열량의 10% 미만, 트랜스지방을 1% 미만으로 제한하라고 권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포화지방을 무엇으로 대신하느냐이다. 버터를 덜 먹고 그 자리를 설탕이나 흰빵으로 채우는 것보다 견과류·생선·불포화지방이 많은 식물성 기름이나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으로 바꾸는 편이 낫다. 불포화지방이 유리한 가장 확실한 이유는 포화지방을 대신할 때 혈중 LDL 콜레스테롤과 아포지단백 B(ApoB) 입자를 줄이기 때문이다. LDL을 비롯한 ApoB 입자가 동맥벽에 쌓여 동맥경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유전연구와 임상시험에서 인과관계로 확인됐다. 이 차이는 혈액검사 수치에만 그치지 않는다. 5만3천여 명이 참여한 11개 장기 무작위시험을 종합하면 포화지방을 줄인 집단에서 심근경색과 뇌졸중 등을 합친 심혈관 사건이 21% 적었다. 다만 사망률 감소까지는 뚜렷하지 않았다. 핵심은 식사에 기름을 더 얹는 것이 아니라 포화지방을 불포화지방으로 바꾸는 것이다. 올리브유나 견과류를 더한 지중해식을 비교한 PREDIMED 연구의 재분석에서는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주요 심혈관 사건이 대조군보다 적었다. 특정 기름 하나의 효과를 가려낸 연구는 아니지만, 지방을 모두 피하기보다 건강한 공급원을 선택하는 식사 전체의 효과를 보여준다. 올리브유는 발연점이 낮아서 튀김 등의 요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고, 가열하면 모든 기름이 해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발연점이 아니라 고온에서 발암물질이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는 것이고, 올리브유는 고온에서 발암물질이 매우 적게 나오는 편이다. 닥터딩요의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의 발연점과 튀김 요리에 자세한 내용이 잘 설명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버터와 라드가 실제 질병이나 사망을 늘린다는 근거는 약하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버터 섭취와 심혈관질환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을 찾지 못한 관찰연구 종합분석이 있지만, 이런 비교에서는 버터를 덜 먹은 사람이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웠는지가 결과를 좌우한다. 버터를 정제 탄수화물로 바꾸면 이득이 없을 수 있지만, 무작위시험에서는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먹었을 때 LDL 콜레스테롤이 더 낮았고, 22만여 명을 최장 33년 추적한 연구에서는 버터 10g을 식물성 기름으로 바꾸는 경우 전체 사망 위험이 17% 낮은 것으로 추정됐다. 라드는 장기 연구가 더 부족하다. 버터와 라드를 독처럼 피할 필요는 없지만, 주된 지방으로 삼기보다 불포화지방이 많은 기름으로 바꾸라는 지침이 현재 근거에 더 잘 맞는다. 단백질은 충분히, 과하지 않게 단백질은 매 끼니 챙기되 무조건 많이 먹을 필요는 없다. 밥·면·빵만으로 끼니를 때우지 말고 콩·두부·생선·달걀·유제품·육류 가운데 하나를 곁들인다.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육은 줄이고, 붉은 고기의 일부는 콩·두부·견과류나 생선으로 바꾼다. 미국의 2025~2030 식이지침은 하루 단백질 섭취량으로 체중 1㎏당 1.2~1.6g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심장협회는 모든 성인에게 이만큼 필요한지는 더 연구해야 하며, 붉은 고기와 고지방 유제품을 늘리면 포화지방 섭취도 함께 늘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인 식사를 하는 건강한 성인이라면 단백질을 최대한 늘리기보다 끼니마다 빠뜨리지 않고 공급원을 다양하게 고르는 편이 합리적이다. 32개 장기 관찰연구를 종합한 분석에서는 식물성 단백질 섭취량이 많은 집단의 모든 원인에 따른 사망 위험과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이 낮았다. 따라서 단백질은 얼마나 먹느냐 못지않게 무엇으로 먹느냐도 중요하다. 다만 근육 감소 위험이 큰 노인이나 운동량이 많은 사람은 활동량과 건강 상태에 맞춰 필요량을 높일 수 있다. 나트륨·첨가당·술은 전체 섭취량을 관리하라 앞서 다룬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은 공급원이 중요했다. 나트륨·첨가당·술은 하루 동안 섭취한 총량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국·찌개·반찬·소스의 나트륨과 달게 마시는 커피·음료·간식의 당은 한 끼가 아니라 하루 전체로 본다. 세계보건기구는 성인의 나트륨을 하루 2g 미만, 소금으로는 약 5g 미만으로 제한한다. 설탕·꿀·시럽·과일주스에 든 당을 포함한 자유당은 하루 섭취 열량의 10% 미만이 목표다. 통과일과 우유에 원래 들어 있는 당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내 영양표에 첨가당이 따로 없다면 비슷한 제품의 100g 또는 100㎖당 당류와 나트륨을 비교한다. 건강을 위해 마셔야 할 술은 없다. 미국심장협회의 2026년 식이지침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음주를 시작하지 말라고 권한다. 이미 마신다면 마시는 횟수와 한 번에 마시는 양을 줄인다. 건강식도 맛있어야 한다 건강식은 맛을 포기하고 참아야 하는 식사가 아니다. ‘진짜 음식’을 먹으라는 첫 번째 지침도 원재료를 자기 취향에 맞게 조리해 먹으라는 뜻이다. 단맛과 감칠맛, 지방에서 오는 고소한 맛을 모두 포기할 필요도 없다. 직접 요리할 수 있다면 좋아하는 식재료와 조리법을 활용하면 된다. 매번 요리하기 어렵다면 채소가 많은 메뉴를 고르거나, 고기를 먹을 때 쌈 채소를 넉넉히 곁들이는 식으로 맛을 즐기면서 식사를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아무리 영양학적으로 훌륭한 식단도 맛이 없어 계속 먹지 못하면 장기적인 건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네 가지 식단을 1년간 비교한 무작위시험에서도 체중 감소는 식단의 종류보다 얼마나 꾸준히 지켰는지와 더 밀접했다. 맛은 건강을 위해 포기해야 할 사치가 아니라 건강한 식습관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고르는 데서 그치지 말고, 맛있게 먹을 방법까지 찾아야 한다. 조금씩이라도 지키자 지금까지 일반적인 지침 하나와 구체적인 식이지침 다섯 개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이 모두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완벽하게 식이지침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완벽한 식생활이 아니라, 지금보다 조금 더 건강한 식생활이다. 식이지침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한두 번 어기고 나면 포기하고 이전 식습관으로 돌아가곤 한다. 이렇게 완전히 포기하는 것보다는 작은 거 하나라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계속 치킨, 라면, 등등 먹어왔는데 갑자기 안 먹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매일 저녁 라면을 먹는 것보다는 주6일 저녁 라면을 먹고 하루 저녁은 비빔밥을 먹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끼 건강식으로 바꾸는 것으로 시작해도 된다. 그러다 일주일에 두 끼, 세 끼 늘려가도 되고, 먼저 흰 쌀밥을 잡곡밥으로 바꾸는 것으로 시작해도 된다. 평소 식습관에서 채소류만 추가해서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늘은 건강한 맛으로 먹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냥 원하는 것을 먹어도 좋다. 내일 다시 식이지침으로 돌아오면 된다. 내일도 안되면 모레 돌아오면 된다.

‘무섭노’는 방언인가 일베 말투인가

리센느의 '무섭노' 발언과 일베 말투 2026년 7월, 걸그룹 리센느의 원이와 영상 제작진이 주고받은 “무섭노”가 전국적인 논쟁이 됐다. 한쪽은 의문사 없이 -노를 붙인 일베 말투라고 했고, 다른 쪽은 경상도에서 오래 쓴 감탄형 방언이라고 맞섰다. 논쟁은 원이의 고향인 거제시에 공식 입장을 묻는 민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연합뉴스 2026 여기서 리센느가 사용한 표현을 통해서 그녀가 일베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0여년 전이었다면 일베 외에는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었기 때문에 매우 강한 심증을 가질 수 있겠으나, 지금은 일베 말투가 인터넷을 통해 젊은 세대에 널리 퍼진 상황이라 말투만 보고 일베인지, 혹은 일베의 사상을 추종하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리센느를 일베라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리센느가 사용한 표현이 일베 말투인지 아닌지조차 논란이 되고 있다. 원이는 경남 거제도 출신이라 동남방언로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 문제는 리센느가 일베인지 아닌지와 별개로 어느 정도 검증이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헌을 통해 검증해보고자 한다. -노 어미의 활용에서 일베 말투와 동남 방언의 차이 검증에 앞서 일베 말투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노를 온갖 용언에 다 갖다 붙이는 것이 일베 말투라고 할 수 있는데, -노 어미는 원래 동남방언에서 널리 쓰이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상도 사람이 아니라면 일베 말투와 동남방언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 경상도 사람들은 어떻게 일베 말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동남방언에서는 -노가 생각보다 강력한 제약과 함께 쓰인다. 의문사와 함께 쓰이거나, 감탄사, 정도·대조 표현, 과장 등이 선행된 상태에서 어미로 쓰이면서 감탄이 섞인 의문문으로만 쓰이고, 똑같은 감탄 뉘앙스의 의문문이라도 선행하는 다른 표현 없이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베 말투는 이런 이해 없이 아무 말에나 -노를 붙이기 때문에 동남방언 화자는 어색함을 느끼고 그건 동남방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것이 일베 말투가 아니라 동남방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든 동남방언를 한 명이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반박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일베 말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명시적 의문사, 복원 가능한 생략 성분, 감탄사, 정도·대조 표현, 과장, 수사의문 등의 해석 단서 없이 단독형으로 쓰이는 -노 어미 논란이 된 "무섭노"를 비롯해서 "밥 먹었노", "귀엽노" 등의 표현, 그리고 최근에 명사에 바로 붙어서 쓰이는 "도시노" 같은 표현까지 앞에 다른 단서 없이 단독형으로 쓰이는 것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와이리 무섭노", "밥 뭐 먹었노", "아따 귀엽노" 같은 표현은 일반적인 동남방언로 분류된다. 그래서, 검증할 대상은 다른 수식어 없는 단독형 -노 어미가 동남방언에서 널리 쓰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일베 이전에도 흔한 말이었나? 검증에 앞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 하나 더 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일베 말투가 실제로 언중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연구를 한다면 당연히 일베 말투가 실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될 것이다. 현 시점에는 단독형 -노가 방언을 떠나서 전국적으로 꽤 많이 쓰인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게 일베 말투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만약 단독형 -노 어미가 일베와 상관 없이 원래 동남방언의 일부라면 일베의 등장 이전에도 동남방언에서 널리 쓰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베의 -노 용법이 확산되기 이전인 2008년 이전의 방언 연구 자료들을 살펴본다면 단독형 -노가 동남방언에서 널리 쓰이던 말인지 아닌지를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조사한 결과로 일베 등장 이전에 동남방언에서 거의 안 쓰였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해도 단독형 -노가 일베 말투라는 게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는 100%가 없고, 언어학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2008년 이전에는 거의 안 쓰이던 말투지만 일베와 상관 없이 어떤 다른 강력한 요인이 있어서 자연 발생적으로 단독형 -노의 사용이 늘었을 가능성도 제로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유력한 가설이 없고 일베만큼 단독형 -노를 활발하게 사용한 집단이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이게 일베로부터 유래한 말투라는 것은 꽤 강력한 가설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방언 연구 자료에서 살펴보는 -노 어미의 활용 다행히 방언 연구는 20세기에도 상당히 많은 연구자료가 있기 때문에 꽤 많은 논문과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논문에서부터 국립국어원의 게시판 답변까지 10여개의 자료를 분석해 보았다. 우선, 가장 많이 나오는 주장은 -노가 의문사와 함께 의문문으로 쓰인다는 분석이다. 자료에 인용된 실제 표현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 중에서 ‘-가, -나’와 ‘-고, -노’는 문 속의 의문사의 有無에 의하여 선택되는 것으로서 의문사가 없으면 전자가, 있으면 후자가 각각 선택된다(15).” 그리고, 이 어법의 활용예로 “지금 비가 오나?”와 “비가 얼매나 마이 오노?”를 보여준다. 좀더 강력한 주장으로 -노를 판정의문문으로 분류하며 판정의문문에 -노가 선택되는 경우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논문도 존재한다. 의문사 없이 쓰인 용례도 존재한다. “눈물부터 나노.”, “할ㄹ튼 365일 고독타노 ㅋㅋ 미친데이!”, “아이고, 얄궂애라(이상해라) 산이 걸어가노?” 등의 표현에서 의문사가 없지만 대신 앞에 있는 표현들이 강조, 과장을 드러내거나 감탄사를 써서 감탄의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의문사가 아니라도 다른 수식어와 함께 -노를 쓰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 없이 단독형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인 2022년 논문에서야 그런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이건 이미 일베의 영향을 받은 이후라서 "원래부터 쓰였던 방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베 등장 이전에 단독형 -노 어미는 동남방언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상세한 분석 자료는 동남방언의 -노 어미 활용에 대한 자료 분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과거 기록은? 이 주장에 대한 반례로 일베 등장 이전의 과거의 인터넷 기록에서 단독형 -노가 쓰인 글들을 제시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시대든 어떤 방언이든 일반적인 용례와 다르게 사용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지금도 표준어를 사용하면서도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맞춤법을 많이 틀린다고 해서 틀린 그 용법이 일반적인 어법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언중의 규모가 천만 단위에 이르는 상황에서 틀린 용법이 수십 건 나오는 걸 의미 있는 분량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수십 건마저도 상당 수는 의문사가 붙어 있거나,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다른 감탄 맥락의 표현이 선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할머니한테 물어봤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개인적으로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할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이런 후기가 많이 올라온다. "무섭노"라는 표현을 쓰냐고 물으니까 쓴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엄밀하게 단독형 -노의 활용을 물어본 것이 아니다. 심지어 몇몇 영상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답하는 과정에서 "와이리 무섭노"라고 실제로 표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주장들은 증거로 채택하기 어렵다. 이는 반대쪽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동남방언 화자 중에서도 단독형 -노를 이상하게 느끼고 그거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단편적인 일화들은 마찬가지로 근거가 되기 어렵다. 앞서 굳이 10개가 넘는 문헌을 살펴보고 분석한 것도 이처럼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은 일화들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인 근거를 찾기 위함이다. 리센느는 그럼 일베인가? 이처럼 단독형 -노는 일베의 등장 이전에는 동남방언에서 거의 쓰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베 이외에 이 말투의 확산에 기여한 다른 유력한 후보가 없는 상황이라, 이 말투는 일베 말투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다. 그렇다면 일베 말투를 쓰면 일베인가? 혹은, 일베를 추종하는 세력인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이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 이미 일베 말투는 젊은 층에 깊숙히 침투했기 때문에 역으로 일베와 무관한 사람들도 일베 말투를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리센느는 일베 추종자라고 볼 수 없다. 그냥 주위에 그런 말투를 쓰는 사람이 많았고, 본인도 의문사 등이 결합된 -노 용법은 즐겨 써왔던 방언 화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섭노" 같은 표현을 쓰게 되었을 거라고 보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추정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리센느에게 일베 말투를 쓴다 정도의 이야기는 있었지만, 일베라고 몰아붙이거나 공격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어서, 이 점에 대해서는 다들 상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베 말투는 쓰지 말아야 하나? 단독형 -노가 일베 말투라면 쓰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써도 된다. 일베가 비난 받는 것은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조롱하는 패륜적이고 반민주적인 언행 때문이다. 그런 언행을 하지 않는다면 -노를 좀 쓰든 뭐가 문제겠는가. 설령 -노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해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들, 실제로 쓰는 사람이 조롱의 의도를 가지지 않고 쓴다면 그리 나무랄 일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주권자의 권리"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는 김대중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이다. 조롱의 정도가 패륜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깟 조롱 쯤 웃어넘길 사람이다. 조롱에서 시작한 일베 말투라 할지라도 지금 조롱의 의미를 담지 않고 쓰는 것까지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말투가 원래 있던 동남방언이 아니라 일베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사용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