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성역인가?

“5·18은 성역인가?”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이후 어느 순간부터 소셜 네트워크에 이 질문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민주사회에 묻지 못할 역사는 없으니 얼핏 답은 간단해 보인다. 5·18을 둘러싼 징계와 보상, 유공자 심사와 법률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좀처럼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스타벅스 사건 이후 배재고 야구부까지 스타벅스가 시작한 조롱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비판이 쏟아지자 이에 대한 반발로 5·18이 성역이냐는 질문이 쏟아지면서 표현의 자유와 “성역” 질문, 북한군 개입설, 5·18 전체를 폭동으로 부르는 주장, 유공자 명단 의혹 등으로 이어졌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5·18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막아야 할까? 5·18은 성역처럼 지켜야 하는 것일까? 5·18에 쏟아지는 의혹들은 정당한 의혹일까? 이제부터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5·18은 정말 성역으로 취급되고 있나?

"5·18은 성역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정말로 성역으로 대우받고 있기에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인지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5·18은 정말로 성역으로 취급되는가?

우선, 5·18에 대해 갖가지 의혹들이 난무한다는 것부터가 5·18이 성역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정말 성역이라면 의혹 제기에 대해 제제가 가해질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위법 사실이 없는 이상, 근거가 아예 없는 의혹 제기도 처벌 받지 않는다. 그러니까, "5·18은 성역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짧은 답은 "아니오"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이 나올까? 마치 5·18이 성역처럼 보호받고 있다는 관념은 왜 나오는 것일까?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하나는, 5·18에 대한 의혹 제기가 비판 받는 것을 억압이나 제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그런 의혹 제기가 다른 시민들에 의해 비판 받는 것조차 성역 취급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들의 비판은 비판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마음이다. 5·18에 대해 의혹 제기를 할 수 있듯이, 그 의혹 제기에 대한 비판 역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사회의 토론이다.

두번째 이유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8조일 것이다. 이 법은 5·18에 관한 허위사실을 공개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정보통신망과 출판물뿐 아니라 공개 토론회·기자회견·집회 발언도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수단으로 열거하지만, 그 장소에서 나온 모든 부정적 표현을 처벌하는 조항은 아니다.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 과정에 관한 보도 등에는 명시적인 예외를 둔다. 이 법은 마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허위사실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 2항)가 있는 한국에서 이 법은 기존 법 체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것은 논란이 많지만, 허위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선진국에도 있는 법이다. 이 법은 실제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를 제제하는 것이므로 헌법 정신을 넘어서서 언론의 자유를 제약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법이 왜 생겼을까? 이미 기존 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할 텐데 왜 굳이 5·18에 한해서 이런 법을 추가로 만든 것일까? 이 조항이 생겨난 것은 역설적으로 5·18이 성역이기는 커녕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의 희생량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5·18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증거가 넘치도록 쌓여 있고 그 증거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5·18이 북한간첩의 소행이라느니, 시민들이 먼저 무기를 들고 폭동을 일으킨 것이라는 등의 허위사실이 퍼뜨리는 것은 5·18 희생자들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활동인 시민운동을 부정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명예훼손을 넘어서서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런 법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5·18은 계속 근거 없는 음해에 시달려왔고, 5·18 특별법이 생긴지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참 전에 허위로 판명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5·18이 성역이냐고 묻는 것은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 있겠다.

5·18에 대한 의혹들

그럼 5·18에 쏟아진 의혹들은 정말 다 거짓인가? 어떤 의혹들이 있고, 그런 의혹들은 어떤 검증을 거쳐서 거짓이라는 판정을 받았는지 살펴보자.

북한군의 개입은 사실인가?

북한군 개입 여부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처음부터 명시적으로 조사 과제로 삼았다. 이른바 ‘광수’ 사진, 탈북자 증언, 간첩 검거 발표 등 북한군 개입 주장을 일곱 과제로 나눠 검증했고, 조사위는 이 핵심 주장들이 허위라고 결론냈다. 조사 과정에서 지만원이 주장한 북한군 개입 증거 42개는 근거가 없거나, 5·18 시기 촬영된 사진을 잘못 판독하고 이를 제한된 군사 지식으로 해석한 엉터리인 것으로 판명됐다. 탈북자들의 북한군 개입설도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조사위는 자신이 직접 광주에 침투했다고 주장한 정모씨를 조사했는데, 정씨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5·18에 참여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결론 내렸고, 정씨 본인도 침투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의혹들이 실질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에 인정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 의혹은 전두환 본인에게서도 부정된 바 있다. 2016년 4월 23일 신동아의 전두환 인터뷰에서 전두환은 북한군 침투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전두환 “전혀.” 이순자 “각하가 청와대를 경호하는(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때 북한 특수군(1968년 김신조 일행의 1·21 침투사건)이 내려온 걸 물리쳤고, 1사단장 하실 때 북한이 땅굴을 파고 남침한 걸 잡아냈죠. 그래서 광주사태 때 간첩을 집어넣어서 광주사태를 악화시켰거나, 또 그걸 기화로 이북에서 사람을 들여보냈거나 그럴 개연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증거가 없어요. 그래서 각하는 아예 말씀을 안 하세요.

지금 그 말(북한군 침투설)을 하는 사람은 각하가 아니고 지만원이란 사람인데, 그 사람은 우리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독불장군이라 우리가 통제하기도 불가능해요. 그걸 우리와 연결시키면 안 돼요.”

고명승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우리 연희동에서 코멘트한 일이 없습니다.”

전두환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어디로 왔는데?”

정호용 “5·18 때 광주로. 그래서 그 북한군들하고 광주 사람들하고 같이 봉기해서 잡았다는 거지.”

전두환 “오…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전 전 대통령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두환은 이렇게 인터뷰한 이후에 나중에 회고록을 내면서 이 주장을 뒤집고 다시 북한군의 개입을 주장했다. 그래서 전두환의 회고록은 5·18 특별법에 의거해서 출판 및 배포금지를 재판에서 다투었고, 그 재판에서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검증된다. ‘현재 북한은 한국의 정치 불안을 빌미로 어떤 군사행동도 취할 기미가 없다’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문건(1980년 5월) 내용도 판결문에 담겼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376317

5·18은 폭동이었나?

5·18 광주에서 시민이 총기로 무장했고 군대와 맞서 싸웠다. 시민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5·18은 폭동인가? 혹은 반란인가? 폭력시위인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폭동”이라는 말은 가치중립적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폭동은 사전적인 의미는 "집단적 폭력 행위를 일으켜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일"이다. 단순히 폭력이 있다는 것만으로 폭동이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5·18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히기는 커녕, 신군부의 헌정 파괴에 맞서 헌정 질서를 지키려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이 계승한다고 선언한 4·19 혁명도 폭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마산에서는 3만여 명의 시위대가 자유당 관련 시설을 파괴했고, 서울·부산·광주에서도 경찰시설 공격과 방화, 건물 파괴가 벌어졌다. 분명히 폭력이 동반된 시위인 것이다. 하지만, 4·19 혁명은 아무도 폭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심지어 4·19는 헌법 전문에도 인용되어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다음은 헌법 전문의 첫 구절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그러니까, 폭력이 동반된 시위였던 4·19를 헌법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개념으로 보고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까 폭력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폭력이 왜 발생했고, 어디를 향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시민의 저항권으로도 설명된다. 독일 기본법은 다른 구제수단이 없을 때 헌정질서를 폐지하려는 자에 맞설 권리를 명시하고, 그리스 헌법은 헌법을 폭력으로 폐지하려는 자에게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저항할 권리이자 의무를 규정한다. 포르투갈 헌법은 공권력에 호소할 수 없을 때 공격을 힘으로 물리칠 권리까지 명시한다. 우리 헌법은 명시적으로 저항권을 기술하고 있지는 않지만, 4·19 민주이념의 계승을 선언한 것은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시민의 저항권은 무소불위의 권한이 아니다. 무력저항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이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필요한 범위인지, 민간인을 구별해 보호했는지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5·18은 그런 시민 저항권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을까?

5·18은 신군부의 헌정질서 파괴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정당한 이유는 충분하다. 이는 5·18 특별법 첫번째 조항에서도 밝히고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정지 등에 관한 사항 등을 규정함으로써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민족정기를 함양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광주 시민에게 무력저항이 최후의 수단이었음도 명백하다. 5월 21일 오후 1시, 신군부는 금남로에서 연좌 농성 중이던 시위대에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이날 총격으로 항쟁 기간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그리고 곤봉과 총 개머리판으로 구타하고 상점과 건물 안까지 추격했으며, 실탄을 발사해 다시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 비무장 시위대가 군대로부터 총격을 받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같이 무장하고 싸우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민군이 무장한 목적 자체가 시위대를 포함한 시민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며, 광주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자발적인 도움도 그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광주 시민군의 무력저항은 시민의 저항권 발동으로 인정 받기에 충분하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고, 그 결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시민의 저항권이 아니라 정당방위, 혹은 자위권도 성립한다. 형법 제21조에 따르면,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막는 상당한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한다.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군대의 일제 사격은 부당한 침해임이 분명하므로, 정당방위 또한 성립한다. 국내 법학계에서도 5·18을 헌정질서를 지키려는 집단적 저항권의 행사이자 불법적인 국가폭력에 대한 자기방어의 성격을 함께 지닌 사건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5·18을 폭동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폭력시위라고 부르는 것도 일견 객관적인 용어처럼 보이지만, 실체적 진실을 전달하는 표현이라 할 수 없다. 5·18 특별법 또한 이 역사적·법적 판단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적고 있다.

2조 1. “5ㆍ18민주화운동”이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5·18 유공자 명단은 왜 공개하지 않나?

국가 유공자 명단인데 공개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일지 모르지만, 5·18 외의 다른 국가 유공자들도 명단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전체 실명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5·18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보훈행정의 원칙이다.

그렇다면 왜 국가가 지정하는 유공자인데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일까?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다. 국가 유공자는 대개 국가에 기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 신체의 일부 등 심각한 희생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국가 유공자라는 것이 명예로운 사실이기는 하나, 그런 희생을 노출하고 싶지 않은 경우는 많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공을 세웠지만 그로 인해 장애인이 되었다면 그것을 공개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고엽제 유공자들도 자신이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걸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민주화 운동 중에 잡혀서 실형을 산 경력도 명예로운 경력이라고 보지만, 또한 전과자 딱지가 붙기도 한다. 그런데, 국가 유공자의 인정 사유와 명단이 공개된다면 전사·부상·장해·질병·구금 경위와 유족관계 등이 함께 드러나기 쉽다. 그래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예외도 있다. 국가보훈부는 독립유공자의 성명과 운동계열, 훈격 등을 공개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와 학술적 이용, 공훈 선양과 독립운동사 재정립 등의 목적으로 공개하는데, 이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거니와, 독립유공자 대부분이 사망했기 때문에 개인정보 노출의 문제가 매우 적어졌기 때문이다. 조상이 독립유공자임을 숨기고 싶어하는 후손은 거의 없기도 하다.

때문에, 법원에서도 일반 국가유공자와 고엽제후유증 환자 등 다른 보훈대상자의 명단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확인했고, 대법원은 2020년 비공개 처분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확정했다. 국가보훈부가 공개하는 자료도 5·18·4·19·참전·특수임무 등 보훈 유형별 인원 통계이지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법원도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부상 내역과 장해등급이 사생활의 영역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세금이 쓰이는 제도는 철저히 감사해야 하지만, 그 원칙이 곧 국가폭력 피해자의 몸과 수감 기록을 인터넷에 공개하라는 요구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5·18 관련 자료가 모두 비밀이라는 뜻도 아니다. 이해찬·설훈·민병두의 자료를 둘러싼 소송에서 하급심은 세 사람이 당시 국회의원인 공인이었고 유공자 해당 여부와 인정 사유가 이미 공론화됐다는 이유로 공개의 공익이 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면서 등록신청서와 보상결정서 등을 공개하라는 결론이 확정됐다. 일반 피해자 전원의 민감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공인의 지위, 이미 형성된 사회적 관심, 사생활 침해의 정도를 사안마다 따져 인정 근거를 공개하는 것은 다르다. 전체 일반인 명단은 보호하면서 공인 자료를 선별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는 두 판결은 모순되지 않는다.

명단 공개하라는 주장에는 숫자를 뒤섞어 만든 의혹도 따라붙는다. 1,979명은 2023년 「5·18보상법」에 따라 접수된 8차 보상 신청자 수이지, 새로 등록된 유공자의 수가 아니다. 이 신청만으로 유공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5·18민주유공자가 되려면 「5·18민주유공자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보훈부에 별도로 등록을 신청하고 요건 확인과 등록 결정을 받아야 한다. 보상법상 신청과 관련자 판단, 유공자법상 등록은 서로 다른 법적 판단이다. 이 구분을 지우고 1,979명을 “신규 유공자”라고 부르는 것은 검증이 아니라 숫자의 왜곡이다.

필요한 것은 전면적인 신상 공개가 아니라 제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정보다. 현재 국가보훈부는 보훈 유형별 등록 인원과 지원 현황을 공개하고, 행정안전부도 8차 신청 총수와 일부 심의 현황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신청부터 등록·취소·환수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정기 통계, 개인을 식별할 수 없게 만든 대표 결정례, 심사위원의 제척·회피 현황은 더 보강해야 한다. 원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독립적인 외부감사를 정례화하고 오류·취소·환수 결과도 공개해야 한다. 공인의 인정 근거 역시 자동으로 공개할 것이 아니라, 공인의 지위와 사회적 관심, 공개의 공익과 사생활 침해를 사안마다 비교해 범위를 정해야 한다.

투명성은 모든 피해자를 의심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각자 결백을 증명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공개하고 검증해야 할 것은 피해자의 이름과 상처가 아니라, 국가가 누구를 어떤 기준과 증거로 인정했고 그 판단을 어떻게 감사했는가이다.

광주와 무관한 정치인이 유공자 명단에 들어갔다?

“광주와 상관없는 민주당 정치인 40명이 5·18 유공자”라는 명단도 퍼졌다. 이 주장은 일반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5·18 유공자로 임의로 바꿔 불렀고, 퍼진 40인 명단의 대부분은 그 일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단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당사자 확인 결과 우원식·정청래·이학영·박지원·추미애 등은 5·18 유공자가 아니었다. 이 명단은 사실이 아니다.

광주 현장에 없었지만 5·18 유공자로 등록된 정치인이 있긴 하다. 이해찬은 자신과 설훈·민병두가 광주 현지에서 5·18로 희생당했거나 활동한 게 아니고, 당시 광주가 고립됐던 상황을 깨기 위해 서울이나 다른 곳에서 시위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 수용생활을 했기 때문에 유공자로 분류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또한 5·18 특별법에서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아니라 '관련하여'라고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조 2항 마. 5ㆍ18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수배ㆍ연행 또는 구금된 사람

이처럼 이해찬은 실제로 5·18 당시 광주에 있지 않았지만, 광주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시위를 했다가 옥사를 치렀기 때문에 5·18 유공자로 선정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해찬의 경우 대법원도 일반인 전원 명단과 달리 이해찬·설훈·민병두의 공적조서는 공개하라고 한 것처럼 모든 명단이 비공개인 것이 아니라, 공익이 큰 공인은 사안별 공개가 가능하다.

허위에 기반한 의혹 제기

5·18에 대한 대표적인 의혹들을 살펴보았는데, 보다시피 이 의혹들이 새로운 의혹이 아니라 모두 과거에 이미 제기되었던 의혹이고 정부와 민간 단체, 역사학자들이 참여해서 이미 이 의혹들이 거짓임을 밝힌 것들이다. 이렇게 거짓임을 밝혀진 의혹들을 새로운 증거도 없이 계속해서 다시 제기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미 검증된 사실에는 의문을 제기하면 안되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허위 사실 유포는 5·18 특별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허위 사실들을 주장하지 않고 질문의 형태로 묻는다면 어떨까? 이미 검증된 사실이라 하더라도 잘 모르면 물어볼 수 있는 일 아닐까? 광주 시민들이 사실은 자발적인 시위를 한 것이 아니라 북한군의 공작으로 시위를 한 것이 아니냐고 물으면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해 이미 민관이 의견 일치를 보고 수 차례 공식적인 답변을 한 적이 있음에도 계속 물어봐도 되는 것일까?

물론 새로운 근거 없이 이미 해소된 의혹을 계속 제기하는 것은 사회적인 낭비라고는 할 수 있다. 법정 다툼에서도 그런 행동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금한다. 그러나, 민주사회는 법정이 아니고 그런 낭비를 하는 것도 자유이지 않은가? 왜 질문하는 것도 나쁘다고 하나? 이것이 5·18 성역화 아닌가?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5·18 유가족들이 5·18은 북한군의 공작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심지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밝혀내고 공식적으로 인정도 받은 후에 또다시 그런 의문을 접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비유를 하나 해보자. 당신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의심을 샀다. 그런데 기록을 조사한 결과 친일파가 아니며 오히려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렇게 의심을 샀던 일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누군가 모임 때마다 계속 "너네 할아버지 친일파 아니야?" 하고 묻는다. 이 질문은 직접적인 주장이 아니기 때문에 명예훼손으로도 처벌할 수 없다. 법적인 문제가 없는 이 주장은 계속 해도 되는 주장일까? 법을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문제 없는 행동인가?

아마도 자초지종을 아는 사람들은 그 질문을 반복하는 사람을 심각하게 비난할 것이다. 결국 질문이라는 형태로 역으로 비판 받을 가능성을 교묘하게 차단하려 한 얄팍한 모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 5·18에 대해 질문의 형태를 띠고 쏟아지는 이야기들도 같은 차원의 이야기들이다. 만약에 그런 이야기들이 이전에 검토되지 않은 새로운 증거를 들고 나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이 막연한 의혹, 이미 검토되고 반박된 증거들을 들고 나오면서 무한히 의혹 제기를 반복한다면 그 행위는 윤리적으로 매우 질 나쁜 행동이다.

질문을 했으면 답을 받아라

모르면 물을 수 있다. 학교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했거나 유튜브와 SNS의 토막 정보만 접한 사람이라면 “북한군이 개입한 것 아닌가”, “시민이 총을 들었으니 폭동 아닌가”, “유공자 명단은 왜 공개하지 않나”라고 질문할 수 있다. 처음 묻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답이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답에 의해 자신의 생각이 바뀔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위다. 답을 받을 생각도 없이 사람들 앞에 의혹만 던지는 것은 질문이 아니다. 특히 이미 조사와 판결, 자료가 제시된 사안에서 그 답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며 같은 물음만 반복하면, 물음표는 무지를 표시하는 기호가 아니라 불신을 퍼뜨리는 도구가 된다.

“답을 받아라”는 말은 국가의 설명을 무조건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답을 읽고 그 근거를 검토하라는 뜻이다. 동의한다면 의혹을 거두면 되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느 조사에서 어떤 자료가 빠졌는지, 어느 판결의 사실인정이 왜 틀렸는지, 기존 결론을 바꿀 새로운 증거가 무엇인지 제시하면 된다. 그러면 다시 검증할 수 있다. 반론은 기존의 답이 들인 노력만큼 구체적이어야 한다.

5·18에 관한 주요 의혹은 이미 그런 절차를 거쳤다. 북한군 개입설은 군·정보기관 자료와 진상조사로 검토됐고, “폭동”이라는 규정은 신군부의 내란과 계엄군의 폭력 뒤 시민의 무장저항이 일어났다는 판결의 사실관계와 충돌한다. 유공자 명단과 인정 자료의 공개 범위도 법원이 개인정보와 검증의 공익을 비교해 판단했다. 이 결론들이 영원히 수정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제 그것을 뒤집으려는 사람이 새로운 증거와 논증을 내놓을 차례라는 뜻이다.

물음표가 면책특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저 사람이 간첩 아닌가?”라는 문장은 형식상 질문이지만, 맥락에 따라서는 그 사람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로 기능한다. 대법원도 문장 하나의 형식이 아니라 전후 맥락과 암시된 기초 사실, 진위를 증명할 수 있는지를 종합해 사실 적시 여부를 판단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질문할 자유와 질문의 방식·근거에 책임질 의무는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처음 묻는 시민과 답을 확인한 뒤에도 영향력을 이용해 반증된 의혹을 반복하는 사람은 다르게 대해야 한다. 전자에게는 자료와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후자에게는 언론의 팩트체크, 시민의 공개 반박과 정정 요구, 공직에 대한 평가가 따라야 한다. 플랫폼도 질문 자체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이미 반증된 허위의 반복에 사실검증 표시를 붙이고 투명한 기준 아래 추천과 수익화를 제한할 수 있다.

용인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동의하거나 거짓말 앞에서 침묵한다는 뜻이 아니다. 폭력과 사적 보복으로 입을 막지 않고,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시민으로 남겨둔다는 뜻이다. 형벌은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좁은 최후수단이어야 한다. 그 전에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질문에는 답하고, 답을 외면한 반복에는 반박과 책임을 돌려주는 것이다. 질문할 자유에는 답을 들을 책임이 따른다.

5·18은 성역이 아니라 상식이다

성역은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하거나 새 증거로 다시 검토할 수 없는 영역이다. 5·18은 그런 성역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 군과 정보기관, 법원과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십 년 동안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대조하며 거듭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의 발표가 뒤집혔고 책임자들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보상과 유공자 제도도 여러 차례 고쳐졌다. 지금도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당연히 다시 검증해야 한다.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과 모든 주장을 매번 처음부터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해 시위를 일으켰다는 주장은 반복된 조사에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이 무장하고 폭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군부가 먼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계엄군의 폭력과 발포 뒤 시민의 무장저항이 이어졌다는 사건의 순서도 확인됐다. 이를 무시하고 5·18 전체를 폭동이라고 부르면 시민의 폭력만 남기고 쿠데타와 국가폭력을 지우게 된다.

유공자 제도 역시 비판할 수 있다. 심사 기준과 예산, 인정·불인정·취소·환수 통계와 감사 결과는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공직자의 인정 근거도 공익이 큰 범위에서 검증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보훈대상자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일반 피해자의 실명과 부상·구금 기록을 5·18에만 공개하라는 요구는 투명성의 원칙이 아니다. 5·18 피해자만 잠재적인 사칭자로 취급하는 이중기준이다.

“5·18은 성역인가?”라는 질문이 문제인 것은 물음표 때문이 아니다. 이 질문 뒤에 이미 반증된 북한군설과 폭동설, 가짜 유공자설을 줄줄이 다시 세우면서도 앞서 나온 답에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방식이 문제다. 질문은 결론을 영원히 보류시키는 주문이 아니다. 답이 틀렸다면 근거를 들어 반박하고, 반박할 수 없다면 그 답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것은 5·18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사실을 다루는 최소한의 규칙이다. 쿠데타와 저항을 구분하고, 가해와 피해의 순서를 뒤집지 않으며,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근거를 내고, 틀린 주장은 철회하는 규칙이다. 이 규칙이 무너지면 어떤 역사적 사실도 물음표 하나로 끝없이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 민주사회는 질문을 금지해서 기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답하고 확인된 사실을 공동의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기억을 지킨다.

5·18은 성역이 아니라 상식이다.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에 시민이 저항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성역까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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